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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작가 Apr 01. 2016

그녀의 골목길

그녀의 골목길


 


동창회를 핑계로 고향에 내려가던 날, 친정 방문은 건너뛰고 당일에 바로 서울에 올라온다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섭섭해 할 줄 알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친정 엄마가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고, 거기 살 때, 엄마가 딱 니 나이였는데. 그때는 나도 젊은 엄마였지.” 괜히 친정에 들리지 못하는 나에게 잔소리나 싫은 소리를 하실 줄 알았는데, “딱 니 나이였는데”라는 말에 복잡 미묘한 울컥하고 짜증나는 감정이 올라왔다.


 


20살에 결혼해서 21살에 나를 낳으셨던 엄마...


내 초등기 시절 엄마는 30대 초반이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가 친구들 어머니들 보다 유독 젊었던 사실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나도 어려서 엄마의 나이를 굳이 신경 써 본적이 없었다. 지금 나는 30대 끝자락 나이인 나는 39살. 엄마는 당시 고 3수험생 딸을 둔 엄마였다.


 


세상에...


내가 생각하기에 난 아직도 이리 젊은데...


나는 아직도 꿈을 꾸며 젊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꿈꾸는 39살인데, 엄마는 내 진로를 걱정하던 나이 많은 39살이셨다.


첫 아이를 낳을 때도 둘째 아이를 낳을 때도 병원에 빨리 와주지 않은 엄마에게 온갖 투정을 부렸던 철없던 30대였는데, 39살의 우리엄마! 그녀의 꿈은 나였다.


나의 대학 진학을 꿈 꿨고, 나를 데리고 나가면 당신의 외모가 아닌 나의 외모가 칭찬받기를 원하셨다. 엄마와 통화한 후 복잡한 마음으로 KTX에 몸을 실었는데, 2시간도 안되어 고향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동창회 약속 장소를 가는데 괜히 파우치에서 거울을 꺼내어 내 얼굴을 보고 싶었다. 39살의 나를...


20여년 만에 도착한 어릴 적 그 골목길.


도시가 커지면서 내가 살던 동네는 이제 도심의 중심가로 분류되어져, 많은 주택들이 커피숍으로 변해 버렸다. 고향의 이름난 멋진 까페 거리로 꾸며져 있었다.


어릴 적 우리 집에 가보고 싶어 약속시간 보다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골목길의 폭이 왜 이리 좁아 보이는지...


어릴 때는 신작로처럼 큰 골목길이었는데, 복잡한 까페 거리일 뿐이었다. 나만의 추억에 취하고 싶어 예전 우리 집 방향으로 난 골목길에 들어서는 순간, 20년 전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고등학생 때였다. 야간자율 학습을 마친 후 독서실 다녀오는 나를 위해 꼭 골목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셨던 엄마. 슬리퍼에 잠옷 차림,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않고, 내 책가방과 도시락을 받아주며 내게 말을 걸어주셨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피곤하니 말 붙이지 말라고 짜증만 냈던 내 모습...


그녀가 나를 기다리던 그 골목길에 나는 뾰족구두에 잔뜩 멋을 낸 코트를 입고, 누구나 알아볼만한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의 꿈인 나를 맞이했던 그 골목길에, 나는 순수했던 꿈을 꾸던 나를 추억하기 위해 이곳에 다시 찾아왔는데...


동창회를 내가 왜 그토록 기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저 졸업 후 처음 만나는 만남이라 설레였는 줄 알았는데, 나는 어린 시절의 그 골목길이 너무 만나고 싶었던 거다. 사람도 아닌 바로 그 골목길 말이다. 그리고 골목길에 들어 선 순간 골목길은 내가 그리워할 골목길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바로 그녀가 그리워 할 골목길이었다.


얼마나 어리석은지... 골목길에 들어서서 순차적으로 깨닫다니...


 


39살의 엄마와 39살의 딸이 만날 수 있는 곳...


39살 엄마의 꿈과 39살 딸의 꿈이 만나는 곳...


동창회를 한 후 바로 서울에 가려 했던 계획을 취소하고, 다음날 기차표를 예매했다. 39살의 그녀에게 39살 딸을 선물하기 위해서...


나의 골목길이라 여겼던 그 골목길에서 나는 39살의 엄마를 만났고, 그 길은 그녀의 골목길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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