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지 않고도 진한 흔적이 새로움이 될때
어릴 적 붓글씨를 한 2년간 배웠습니다.
깊내서예라는 학원이었지요. 줄곧 피아노나 미술 학원만 다녔던 저로서는 서예 학원이 참 낯설었습니다.
상담받으러 간 첫날 서예학원은 인테리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넓은 탁자에는 고스톱 칠 때나 깔던 군용 모포가 덮여져 있었고 탁자의 중간에는 투박한 큰 벼루가 놓여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먹물 액체가 없어기에 탁자 중앙에 놓인 벼루를 제 앞으로 끌어다가 정성스레 먹을 가는 것부터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일본 묵이 부드럽고 진하게 갈린다고 하시며 우리 묵과 일본 묵을 비교도 해주셨어요.
서예 학원의 첫 수업의 느낌은 도시 한가운데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갖게 해주었어요.
6개월,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 저는 한일 (一)자에서 시작했던 글씨실력이 천자문까지 쓰게 될 정도로 늘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제 묵은 몇 번이나 뭉툭해져 막 붓글씨를 배우러 온 이들의 선망의 물건이 되어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천자문을 쓰고 있던 어느 날,
저는 처음으로 원장님의 난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흰 여백에 한 줄, 두 줄 난을 치는데 온 신경이 붓을 잡은 원장님의 손끝에 가있는 것 같았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원장님의 친 난을 잘 친다 못 친다를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난을 치는 그 행위의 비장함은 보였습니다.
손 끝에 엄청난 힘을 주고 계셨지만, 붓 끝에서 나온 난은 실바람에 흔들리는 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힘을 턱 하니 풀고서 난을 치시는 듯했지만 반질 반질 잘 닦여진 건강한 난 잎이 송지 위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묵으로 그 농도를 조절하는 듯하였는데,
손 끝의 힘으로 난에 생기를 각각 달리 넣는 모습에 뭔지 모른 묘한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원장님의 난치는 모습에 말이지요.
그러다 방학 숙제로 수묵화를 제출해야 했는데, 본 것은 있어서
묵을 갈아 붓에 적셔 송지 위에 탁 탁 떨어뜨렸습니다.
묵이 잘 갈리지 않으면 묵과 물이 따로 표시될 때가 있는데 그날 제 묵의 농도가 그랬습니다.
묵을 한 방울 두 방울 떨어뜨렸는데, 묵 주위에 물의 버짐이 보였습니다.
여백의 미라고들 하는데, 저는 진하게 나타난 묵이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지우개는 지워져도 흔적이 남는데,
진하게 갈린 묵은 오히려 흔적 없는 새로움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때론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롭게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차라리 묵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흔적을 남기는 것이 더욱 새롭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지우개로 지우고 싶은 날도 있지만,
차라리 어설픈 색보다 더욱 진하게 갈린 묵이 되어
다 덮어 버리고 새로운 흔적이 되는 것도 인생 살아가는 꽤 괜찮은 방법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