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자다 소스라쳐놀라 일어났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마침 그 시간 거실에서 남편은 리우올림픽 축구경기를 보고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깜깜한 새벽에 소스라쳐 놀라 깼는데,
거실에 환한 불을 켜놓고 앉아있는
남편이 있어서...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 때문에 남편은 아들 방에서, 나는 딸 방에서 잔다.
그러다보니 요즘처럼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사이의 시간에서 나도 모르게 남편을 찾게 된다.
아직은 나를 스스로 충분히 보호할 만 하나, 보호자를 찾고 싶은 자아가 튀어나오는 순간이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의 시간이다.
이 의식과 무의식의 찰라의 경계 시간은 핑계를 대기에도 딱 좋다.
시,공간적으로 나를 온전히 내려 놓아도 되는 성역의 시간이다.
천군이 제사를 지내던 소도의 역할도 하며,
이승과 저승의 경계같은 보이지 않는
때이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자아가 놀이에서처럼 깍두기가 되어 좀 더 살고 싶어 경계사이의 때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꿈 속에서 나는 거대한 쓰나미를 만났고,
꿈 속에서 나는 다리가 마비가 될 정도로
결승점을 향해 뛸 때도 있었다.
꿈 속에서 나는 아이 엄마도, 아내도 아닌,
한 인간으로 막다른 순간에 맞닿았을때,
숨 쉬고 싶어했고,
멈추고 싶어했다.
그런데 이 모든 순간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사이에서
내가 있고 싶은 경계에서의
찰라의 용납이라는 것이다.
아슬아슬 경계와 경계사이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