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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작가 Dec 12. 2016

엄마, 나 교육 금수저잖아

회사에서 업무 중 폰이 울려 봤더니 6학년 아들의 담임선생님의 알림 문자가 왔다.

교사별 평가와 각종 준비물들이 적혀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날마다 정성껏 올려줘도

대한민국 직장맘들은 다 공감하지 않을까? 한 번 쓱보고 다시 내 업무를 봐야 하는 것을!


평생 교육시대라고 하지만, 나처럼 뒤늦게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는 직장맘 엄마는 그죄인이 된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공부란 건 때에 맞는 시기에 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도 업무 누수가 나지 않게 하려고, 퇴근 후 학교를 가지 않는 날에는 더 솔선해서 야근을 한다. 그래서 학교를 가는 날이건, 가지 않는 날이건 간에 월, 화, 수, 목, 금 귀가 시간이 늘 11시 이후다.

직장에서도 내 몫은 거뜬히 해 내야 하고, 가정에서도 딸로,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해야 하는 일이 많다.

거기다 만학도이므로 같이 공부하는 원우들이 함께 팀 프로젝트를 해도 믿음이 가는 사람이어야 하니 나의 24시간은 늘 25시간이다.


나 또한 중간, 기말 과제가 있으므로 실은 아이들 학교 공부에 집중과 집착을 해 줄 수가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거라고는 잔소리 대신 편지와 스마트폰 대신 책들로 집을 채워준 것뿐이다.

간혹 아이들 사이에서 우리 아이들이 스마트폰도 없다고 놀림을 받긴 하지만 떼써봐야 달라지지 않을 현실을 우리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큰아이가 6학년이 되다 보니 중학교 진학 상담도 해야 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예비 중등 과정을 입시학원을 다니며 다 익혀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집 6학년은 태권도와 피아노만 다닐 뿐이다.

 

키가 나보다도 더 큰 6학년 남자아이가 꼬물꼬물 거리는 초등 저학년들이 많은 예체능 학원만 다닌다는 건 아이로서는 조금 부끄러운 상황이긴 하단다. 그런데 공부하는 학원이 아니니 체력과 취미를 위해 다녀보도록 하겠단다. 실은 이런 예체능 학원도 안 다니게 하고 싶지만, 저녁 11시까지 아이들이 있을 곳이 없다.  도서관이나 이웃 친구들 집 방문조차 허락해주기 어렵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방과 후 이 집 저 집 어울려 다니며 놀았지만, 요즘은 아이 친구들이 방문하는 것도 품앗이다. 엄마들이 완벽하게 손님으로 생각해 맞아주고 모든 스케줄을 아이들에게 맞춘단다. 나처럼 일하는 엄마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반대로 우리 집에 애들이 오게 할 수도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 엄마들이 싫어한다. 마치 우리 집이 아이들이 일탈이라도 할 수 있는 장소가 될까 봐서.

아직 영어학원 한번 다녀본 적 없고, 6학년이지만 단 한 번도 시험 문제집 사서 풀어본 적 없는 이 큰아이에게 늘 미안하면서도 사실은 미안하지 않은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하면서도 한 번쯤은 물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낮에 담임선생님의 알림 문자 내용을 막 잠자리에 들려는 아들에게 물어봤다.

"너 16년도 독서록 쓴 거 정리해서 냈어? 진학하려는 중학교는 적었고? 내일 영어 시험이던데.... 사회는 ppt로 발표자료 해야 한다던데, 너는 어떻게 했어?

거의 속사포로 묻는 잔소리를 겸비한 확인 질문들이었다. 대화가 필요한 아들에게 말이다.

그랬더니 자다 깬 듯한 목소리로 아들이 "엄마, 다 했어요. 그리고 시험도 걱정마요. 제가 이래 봬도 교육 금수저를 갖고 있잖아요."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아들의 대답에 "너 금수저가 사회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그리고 교육 금수저는 뭐야"물었더니 아들이 현답을 내놓았다.

"금수저 알죠? 경제 계급의 지표죠. 근데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에 맞는 금수저 하나씩 다 있어요. 교육, 체육, 종교 등등요. 그중 교육 금수저라 함은 학원을 다니지 않는 나를 말하는 거예요. 늙은(?) 나이에도 엄마는 공부를 하는데,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니 어른되서 놀 수 있다는 생각은 진작에 버렸고요, 수학이나 영어 학원 안 다녀도 내가 하다가 모르는 건 엄마, 아빠에게 아직은 물어볼 수 있잖아요. 고로 걱정 말고 빨리 화장 지우고 주무세요. "

침대에 길쭉하게 누워있는 이 아들이 키만 컸지 아직도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라 여겼는데, 이 아이는 바쁜 엄마, 아빠의 환경에 최적의 상태로 적응이 되어있었다.

거기다 나 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우리는 우리 인생에 각자 금수저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니~

염세적이지 않고, 유흥적이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직시하지만, 긍정으로 바라보고, 어른이 되어 놀아야지 하는 생각은 없지만, 지금부터 하루의 여백을 학원 대신 집에서 잘 누리고 유희적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단순 경제적 지표인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를 각자의 환경과 역량의 지표로 바꾼 아이.

그럼 엄마는 열정만큼은 금수저고 이 열정 금수저를 너희들에게 물려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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