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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작가 Jan 04. 2017

수다 떨고 싶은 날

남편과 짧은 기간 연애를 했지만, 연애 당시 내 하루의 상당시간은 남편에 관한 생각만 가득했었다.

그리고 원거리 연애라 이메일을 통해 나름 실시간 연락을 주고받았다. 

휴대폰 문자는 80바이트라는 한정적 문장만 허용 되던 시절이라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나는 이메일을 수시로 보냈다.

지금처럼 스마트 기기와 인터넷이 자유자재로 연결되지 않았기에

늘 학생회관의 TTL존이나 도서관, 혹은 컴퓨터실에 들어가서 남편에게 실시간(?) 이메일을 썼다.

그리고 화면에서 <보내기>를 누르고 나면

헐레벌떡 내가 들어야 하는 강의실로 뛰어갔었다.

당연히 강의가 마치면 또 다시 나는 단대 로비에 비치된 인터넷 연결된 컴퓨터부터 찾았다.

수업 하던 사이 남편에게서 답 메일이라도 오지 않았을까 하는 설렘에

컴퓨터를 찾아가는 그 시간이 내겐 정말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나누고 싶었고,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우리만의 클라우드에 각자의 하루를 업데이트 하여
원하는 시간에 다운 받아 서로를 다 보고 싶을 정도 였다. 


일전에 ‘설레는 모든 것은 중독이다.’라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남편과의 연애는 나를 날마다 예뻐지게 했고, 날마다 글을 쓰게 했고, 날마다 책을 읽게 했다.

중독이라는 것은 약물이 체내에 들어와 독성에 의해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 대한 사랑, 그 사랑으로 인한 호르몬에 의해 중독되어 기능 장애가 일어났던 것이다. 

안 보던 거울을 보게 되는 신체적 반응이 일어났고, 날마다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며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에 인용구문이라도 넣어보려고 책을 읽었다.

즉 남편과의 모든 것에 설렜다. 특히나 6개월 동안을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이메일로만 서로의 감정을 키워나가던 그 시절이 마치 소설 속 주인공 같아서 너무 감사한 추억이 되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나 만날 수 없는 그 애틋함이 이메일이라는 대화의 수단을 통해 각자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배경, 가치관, 미래의 비전과 꿈까지 가장 많은 대화를 했던 시기였다.

만약 눈앞에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면 외적인 내 모습을 신경 쓰느라 나눌 수 없었던 영역까지 세세히 나누었다. 

그 6개월간의 연애기간이 2년 이상 연애를 한 연인들보다 더 농축적인 대화를 했던 기간이었다.

그래서인지 바로 결혼을 해도 딱히 싸울 일도 없었고, 서로의 행동 습성이 다 이해가 되다보니 서로에 대한 배려가 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어제는 퇴근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문득이라는 단어는 불현 듯 떠올랐을 때 쓰는 단어이다.

일상적이지 않는 불현듯!

결혼 생활 15년 동안 남편과의 대화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게 되는 시점을 맞게 되었다.

전화를 했더니 남편도 퇴근 하는 중이라고 했는데, 내가 

“여보, 집에서 전화 들어와요. 애들인가 봐요. 끊을께요.”

라고 말을 한 후 다시 전화를 남편하게 하지 않았다.

서로 퇴근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곧 만날 것을 알아서일까?


익숙하고, 편하고, 때론 서운하고, 그러면서도 고마운 존재가 지금의 남편이다. 

그런데, 중학생 아들을 둔 주부이면서도 아내인 나는 이제 더 이상 남편에게 중독되지 않았고, 우리 사이에 사랑 호르몬이 없다보니 체내에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어떠한 행동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많다. 책임감이라는 것 때문에.

친구들 마다 결혼한 시기가 다 다르다 보니 시간을 낼 형편이 여의치 않다.

직장동료들은 늘 나를 평가하는 이들이고, 옛 친구들은 그저 안부를 묻기만 해도 좋은데

삶의 주기가 20대 중반이후로 서로 달라져 딱 안부만 묻게 된다.

그래서인지 지금 나는 수다가 그립다.


내 삶을 나누고,

내 생각을 나누던 그 연애 시절의 오빠가 그립고,

우리의 대화 중 방해 받지 않을 환경이 그립다. 

수다를 떨고 싶다는 건 아직까지는 내가 건강하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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