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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에이 Nov 16. 2019

58. 팽나무, 도서관 당산목

신랑이 출근을 한 토요일이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고 동네 서점에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내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들렀다. 도서관 앞 미끄럼틀을 탄다는 둘째의 성화에 잠시 머물렀다. 내가 머무르던 자리 위로 멋진 수형의 나무 한 그루가 가로등 불빛을 받고 서 있었다. 가을이 깊어 겨울로 진입하니 꽃보다 나무를 보게 된다.

팽나무.
나무를 찾은 날이면 밀리의 서재에서 조금씩 읽고 있는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를 뒤지게 된다. 역시, 팽나무가 있다.

나무가 하늘을 향해 크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바람에 수없이 흔들리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냉혹한 바람에 꽃과 열매를 한순간에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뿌리의 힘은 강해지고 시련에 대한 내성도 커진다. 바닷가에 자리한 팽나무가 거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꼿꼿했더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가지들을 지닌 거목으로 자라지 못했을 것이다. 팽나무에게 있어 흔들림은 스스로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드는 기반이었다.

흔들려 봐야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중에서


불혹의 나이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 마흔을 불혹이라 부른 건,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많이 흔들릴 수 있는 나이라 마음을 잘 잡으란 의미라고 알려줬다.
그런데, 바람에 흔들리면서 멋진 수형을 이룬 팽나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 작가의 말에 안도하게 되는 건 나만은 아니겠지.

아, 그리고 팽나무가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더불어 마을의 당산목이었다고 한다. 전북 고창의 한 마을 앞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현존하는 가장 굵은 팽나무가 있다고. 도서관 팽나무 아래서 아이를 기다리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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