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오래 확답을 주지 않던 아빠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삼겹살은!”
“어?”
“뭐 거기 간다매! 삼겹살 사야 할 거 아냐!”
아빠의 칠순을 축하하기 위해 식구들과 여행을 계획했으나, 아빠는 무슨 일인지 자꾸만 대답을 미뤘어요. 일이 있다, 일이 바쁘다, 아주 바쁘다 하시면서요. 남동생과 저는 숙소를 예약해두곤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여행 수락의 첫마디가 삼겹살이라니.
아빠는 제게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아이스박스가 있는데 얼음이 없어!”
“어?”
“삼겹살 넣어가야 할 거 아냐!”
“나 아이스 팩 있어 아빠”
“얼마나!”
“뭐.. 많이?”
“얼려 놨어?”
아 아빠, 여행 갈 때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데. 챙길 게 얼마나 많은데. 거기 근처에 계곡도 있어서 물놀이 옷도 챙겨야 하고, 거기서 최소 두 끼는 먹어야 하니까 메뉴도 생각해야 하고, 내가 있잖아 여기저기 다녀보니까,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필요하고, 아 아냐 아냐. 아빠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빠가 가지고 있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삼겹살에 머무는 것. 아마 그건 아빠가 정말 오랜만에 여행이라는 걸 가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당신 칠순 축하를 위해 여행을 간다는 게 내심 좋으면서, 어떻게 수락해야 좋을지 몰랐던 아빠의 모습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런 복잡한 감정을 거쳐 대뜸 삼겹살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거고요.
저는 아빠가 여행도 다니고 취미도 갖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아빠의 남은 힘과 시간과 열정이 더 이상 일터와 집만 오가지 않길 바랐습니다. 못난 소리지만 저도 다른 가족들처럼 계절마다, 그게 어렵다면 1년에 한 번이라도 같이 여행도 하고 그러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요. 가족 외식으로 처음 가보는 식당을 예약하면, 전날 꼭 먼저 가봅니다. 당신의 예상안에서 일이 움직여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낯선 곳에 불쑥불쑥 가야 하는 여행이 아빠에게 부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을 얼마 안 된 일입니다. 누군가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아빠는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어렵지만 천천히 받아들이는 중이기도 합니다.
아마 무척 피곤하고 고단한 여행이 될 겁니다.
여행은 일주일 남았지만, 아이스팩은 당장 얼려져 있어야 하는 아빠와 가는 여행. 아마 가기 전날까지도 삼겹살을 어떻게 안전하게 가져갈지 고민할 아빠와 가는 여행. 가평에도 정육점은 많고 고기는 숙소 바로 앞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을 여행. 아빠가 사 온 고기가 제일 맛있고 가격도 적당하다고 말해드릴 여행. 가서 배드민턴도 칠 수 있고 자전거도 탈 수 있는데 삼겹살 먹기 전까지는 방에 들어가 주무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뭐든 아빠 좋으실 대로 하시게 할 여행.
칠순이지만 아기 같은 아빠와
실제로도 아기인 제 딸과 함께 가는 여행.
아마 잊지 못할 가족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저희보다 아빠에게 그랬으면 좋겠어요. 여행을 싫어하는 아빠를 받아들이겠다고 한 게 조금 전인데 저는 아직 기대하는 게 있나 봅니다.
2022년 7월 28일 목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