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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아 Mar 13. 2023

16. 언니들 편

박민아의 행복편지 


아이가 저녁밥을 먹고 잘 시간이 되어가는데도 팔팔할 때는, 산책을 나섭니다. 해가 짧아져 저녁 7시 반인데도 캄캄합니다. 주차장을 이리저리 돌고, 이미 자러 가버린 것 같은 까치도 찾으러 갑니다. 그러다 아이도 어둠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밝은 불을 찾아 옆 동 출입구로 갑니다. 


거기에는 귀여운 여자아이 두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 딸은 언니를 좋아해서요. 언니만 보면 손으로 가리키며 “은늬”라고 합니다. 어떤 언니들은 우리 딸의 흔들림 없는 응시와 손가락질을 불편해하지만 (너무 이해돼요. 언니들 괜찮아요), 또 어떤 언니들은 그런 제 딸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저 꼬맹이가 뭘 하고 싶은 걸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 하면서요. 


아이가 그날도 언니를 구경하느라 다른 방향으로 가자는 제 말에도 소나무처럼 단단히 서 있더라고요. 


저는 아이에게 설명했습니다. 

“꼬맹아, 언니들은 이렇게 서서 보는 거 싫어할 수도 있어. 언니들한테 물어보자.” 

(물론 아이는 못 알아들을 수도 있습니다. 제 딸은 2살입니다...) 


그랬더니 언니들이 그러는 거예요. 

“저 안 싫어요. 좋아요!” 


까만 밤을 밝히는 명랑함에 웃음이 났습니다. 둘은 자매라고 했어요. 11살, 12살.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 차를 타고 할아버지 집에갈 거라고요. 


동생이 물었어요. 

“엄마는?” 


언니가 말했습니다. 

“어, 엄마는 늦게 끝나서 거기로 바로 오신대.” 


그 둘은 본인들의 아빠가 올 때까지 제 딸이 빤히 쳐다보는 것을 이해해주었어요. 인사도 해주었고, 귀엽다고 해주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동생이 먼저 아빠 차를 발견하고 뛰어갔습니다. 저는 곧 따라갈 언니에게 오늘 고맙다고 인사한 후, 아이에게 우리도 이제 집에 가자고 말하려는데. 


언니가 아빠를 향해 가다 말고 갑자기 저에게 오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야.. 이거 꼭 말해줘야 할 거 같아서. 꼭 지금 실컷 놀아. 나중에 되면 학원 다니느라 못 놀아...꼭 이야.” 


안쓰러웠고, 응원해주고 싶었습니다. 자매를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엄마 아빠를 위한 마음이기도 했어요. 엄마 아빠 모두 저녁 7시 반이 넘었는데도 퇴근하지 못할 때, 학원은 어쩌면 자매가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곳 아니겠어요. 부모님의 마음도 편하지 않을 거고, 자매도 아마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동시에 제가 자매의 엄마라면 참 기쁘겠다 싶었습니다. 엄마 아빠가 늘 함께 있어 주지 못했지만, 다정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라준 것이 고마울것 같았어요.


주책맞게 코끝이 벌게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갑자기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언니의 마음과, 

그런 언니가 좋아서 언니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던 나의 아이의 귀여움, 

그리고 어느덧 부모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게 된 제 마음이 뒤섞였습니다. 


행복하면서도 쓸쓸했던 밤이었어요. 



2022년 9월 7일 수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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