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아의 행복편지
요즘 자주 아프고, 잘 안 웃고
얼굴이 안 좋던 진성이가
술을 마시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가여운 아이
그 말에서부터 마음이 아파
쪼르르 집으로 갔다.
부쩍 살이 빠져 무슨 일인고 하니
회사가 정말 힘들다고 했다.
진성이 바로 위 직급이 과장부터 시작
매일 매일 혼나기만 한다고 했다.
회사 일이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고
쉽게 돈 버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만은
진성이만큼은 그런 일 없이
편하게 직장 생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맥주잔에 얼굴을 묻고 맥주를 마시는 진성이 눈가에
축축한 물기가 어려
속이 찢어질듯 아팠다.
자존심도 세고, 욕심도 많고
책임감 있고, 착한 진성이는
그만두고 싶어했다.
나는 당장에 그러라고 했다.
닭강정을 입에 밀어넣고
한숨도 쉬고
맥주도 마시고
자책도 해보던 진성이는
나더러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하고는
산책을 갔다.
집에 들어오기 싫은 그 마음이
소름끼치게 와닿아
혼자 돌아오는 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가여운 아이
내 동생은 고생 안했으면 좋겠다.
진성이한테 욕하는 상사들이 밉다.
여자친구에게는
힘들다는 얘기 하기 싫고
결혼하고싶은데
책임감 없는 남자처럼 보일까봐 싫다고 했다.
만약 내 남자친구가 이렇게 힘들다면
내게 와서 힘들다고 말해주었음 좋겠다고 생각하며
진성이한테 병신같이 구는 상사들이
다시한번 더 밉다.
내 동생이 웃음을 잃어 나도 마음이 아프다.
▪️▪️▪️▪️▪️
이 글은 2016년의 일기다.
동생은 회사를 바로 그만두지 않았다. 그럴 거 같았다. 사실 그만 뒀더래도 내가 뭐 책임져주는 건 아니었지.
대신 공부를 선택했다. 퇴근하고 매일을,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서. 원하는 시험에 붙었고, 그 이후 회사를 옮겼다. 당연히 그때 그 여자친구와 결혼했고, 내년이면 아빠가 된다. 정말 귀여운 부부다. 보고 있으면 뭐든 다 퍼주고 싶다. 그런 애들이다. 조카는 또 얼마나 예쁠까.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나에게 힘들다고 말해주었으면 했던 그 남자친구는 내 남편이 되었다. 그는 다행히 어려운 일은 나와 상의해주고 나의 괴로운 일도 물론 함께 나눠준다.
취기에 질질 울면서 썼을 일기 속 모든 고민이 7년의 세월을 먹고 해결됐다. 7년 전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 덜 괴로웠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7년 후를 믿기로 한다.
7년 후에 행복을 건다. 지금의 고민이 우습게 사라져 있기를.
2022년 9월 9일 금요일
행복편지 지기
박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