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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영 Dec 28. 2018

나 안아주기, 권아리

두 번째 잔

<우아한 표류>, 권아리

 자주 그런 질문을 받았다.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으냐거나 어떤 삶을 살고 싶으냐는, 평범하다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질문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건 아직 내가 아닌 나에 대한 물음이었다. 지금 이 순간의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대답을 떠올리려면 늘 시간을 거슬러야 했다. 이야기의 방향을 따라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더듬곤 했다.

<나만의 행성>, 권아리

 문제는 그렇게 미래에 머무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생겼다. 한참 꿈을 더듬다 현실로 돌아오면 내게서 모자란 점들만 눈에 띄는 거였다. 안 그래도 목적지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설상가상 길목마다 구덩이가 패어 있는 기분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도착하고 싶은데 그곳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의 간격이 터무니없이 큰 것 같아 초조했고, 가는 도중에 구덩이에 빠지기라도 할까봐 무서웠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갈 테니까. 불안이 삐죽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버둥거리면서 더 열심히 달렸다.

<Slowing down the world>, 권아리

 언제부턴가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지치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긴 계절을 보냈는데도 겨울잠을 자려면 아직 먼 시간 속의 곰처럼. 그럴 때면 동굴 대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눈을 감으면 닫힌 눈꺼풀 아래로 어둠이 우주처럼 펼쳐졌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기억은 아스라해지고 새로운 풍경이 시작되었다. 지칠 때면 종종 숨어드는 곳이었다. 매일 밤 꿈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아오던 풍경들, 권아리의 그림은 바로 그 풍경을 닮았다.

<타오르는 바람>, 권아리

 우리가 자면서 꾸는 꿈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들었다. 마치 컬러텔레비전과 흑백텔레비전처럼, 누군가는 색감이 선명한 꿈을 꾸고 또 누군가는 색이 완벽하게 지워진 꿈을 꾼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색깔이 존재하든 지워졌든 상관없이 권아리의 세계는 한결같이 신비롭다. 그곳에서는 은빛 나무들 사이로 은하수가 강물처럼 흐르고, 그 위로 별들이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닌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오면 분홍빛 덤불이 솜털처럼 흔들리기도 한다. 꿈결 속을 걷는 듯한 기분으로 차근차근 따라가게 되는 풍경들, 그 끝에서 어김없이 누군가와 마주치게 된다.


<Dream-ing>, 권아리

 포도송이처럼 피어난 풍선들이나 덥수룩한 머리카락 뒤에 숨어 있기 때문에, 사실 그가 누구인지는커녕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조차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에게 시선이 머무른다. 투명한 어깨며 윤곽선처럼 마음도 여려 쉽게 상처받을 것 같기도 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길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손대면 바스스 흩어질 것 같은 느낌. 때때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이라는 말처럼 그의 뒷모습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서 더욱 신경이 쓰인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얼굴조차 모르는 이 사람이 그리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시감은 나만의 착각일까.

<가볍고 짙은>, 권아리

 묘한 기분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기다림의 냄새가 난다는 걸. 누굴 저렇게 처연하게 기다리는 걸까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는 또 다른 나였던 게 아닐까. 되어야 할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미처 돌아봐주지 못했던 지금 이 순간의 나. 앞만 보고 달리느라 구덩이에 빠진 줄도 모르고 저만치 두고 와 버린,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나.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말없는 뒷모습이 왜 그리 시선을 붙잡았는지.  

<Healing Planet>, 권아리

 어디선가 듣기로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꼭 한 번씩 멈춰 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내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혹시나 나를 놓치지는 않았는지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많은 걸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죽을 만큼 달렸던 것이 때로는 의미 없는 발버둥이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여전한 노래>, 권아리

 때로는 스스로를 쓰다듬고 토닥여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흡족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권아리의 그림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 밤에는 그림 속의 사람이 내 꿈에 나타나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 동안 혼자 두어서 미안하다고 꼭 안아줄 텐데. 어깨도 토닥여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함께 쉬엄쉬엄 걸어갈 텐데. 


*

     

<오후의 그림 한 잔>, 두 번째 잔은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권아리 작가와 함께 마셔볼까 합니다.

이 글은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블로그에 기고한 글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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