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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영 Feb 13. 2018

일러스트레이터 숀 탠이 삶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방법

 일러스트에서부터 그림책, 동화,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숀 탠의 작품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기묘한가 하면 사랑스럽고, 우울한가 하면 따뜻하며 비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에서 한 번쯤 일어날 것만 같다. ‘국제 미래의 출판미술가 상’ 수상, ‘세계 판타지 어워드’ 최고의 아티스트 2회 선정,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그랑프리 수상… 그림책 네 권을 통해, 수식어마저 화려한 숀 탠의 작품세계를 살짝 들여다보자.


<Desert Storyteller>
<Never be late for a parade>

숀 탠(Shaun Tan)은 이민자로 가득한 호주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난 중국계 말레이시아 이민 2세다. 그의 유년시절은 어느 나라 사람이냐는 질문에 ‘여기’ 사람이라고 대답하면 “부모님은?” 하는 질문이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두 세계의 경계에 발을 디디고 있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해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사유한다.


1. 도착

<도착(The Arrival)>(2006)
<도착>은 2006년 볼로냐 라가치 특별상 수상작이다

 그의 대표작인 <도착>은 이민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익숙한 곳을 떠난 주인공이 막 도착한 도시는 암호 같은 글자와 거대한 괴물들로 가득한 괴상한 곳이다. 오래된 필름영화를 연상시키는 흑백 일러스트에서 말 통하는 이 하나 없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온다.


2. <잃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The Lost Thing)>(2002)
<잃어버린 것>은 볼로냐 라가치 명예상 수상작이다

 차가운 배관으로 이루어진 도시가 배경인 <잃어버린 것>에도 기묘한 생명체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바빠 도시 한복판에 버려진 이 생명체를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유일하게 갈 곳을 찾아주려는 소년이 나타나지만, 이 생명체가 어떤 존재인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버려진 것’이 갈 곳은 분실물 처리 센터뿐이다.


3. <에릭>

<에릭(Eric)>
<에릭>은 단편집 <먼 곳에서 온 이야기들>에 수록되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에릭은 ‘이곳’의 사람들과 언어도 생각도 통하지 않는다

 짧은 동화 <에릭>에는 외국인 교환학생 에릭이 등장한다. 외국인 교환학생 에릭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에릭에게 사람들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밖에 대답하지 못한다. 문화적 차이일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은 지울 수 없다.


<Dinner Table>
<Feeding Time>
<Eric>

 숀 탠이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은 여기서 돋보인다. 외로운 이민자에게는 겉모습은 조금 생소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존재가 나타나고, 분실물 처리 센터를 찾아간 소년에게는 진짜 가야 할 곳을 귀띔해주는 청소부가 등장한다. 언어도, 생각도 통하지 않던 에릭은 떠나기 전 감사 인사를 남길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낸다.


4. <빨간 나무>

<빨간 나무(The Red Tree)>(2002)
<Darkness overcomes you>
<The Red Tree>

  불안과 우울로 얼룩진 하루의 끝, 방 한가운데에 빨간 나무가 소담스럽게 피어나 있는 <빨간 나무> 역시 삶에 지친 이들을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반짝이는 빛을 한 움큼 쏟아부은 듯 환상적인 일러스트가 은은한 풍경 소리처럼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독특한 상상력과 은유로 이루어진 숀 탠의 세계에선 정확한 답이 제시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종종 난해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위로를 얻는 건, 곳곳에 녹아 있는 따뜻한 시각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 아닐까. 앞으로 그가 또 어떤 보석 같은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되는 이유다.


숀 탠 공식 홈페이지 http://www.shauntan.net/

숀 탠 블로그 http://thebirdking.blogspot.kr/

***

이 글은 제가 '인디포스트'에서 쓴 기사입니다!

미처 다 옮겨오지 못한 동영상들을 함께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http://www.indiepost.co.kr/post/6014 여기로 놀러와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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