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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죠르노 인터뷰 보기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이탈리아 정착 수난기

by 제시카

이야, 마지막 글이 작년 10월에 썼다가 홀연히 사라졌었군.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이탈리아 정착 수난기 오늘도 한 번 써 본다.


아 그리고 혹시 왜 자꾸 잠수 타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쓸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여타 다른 블로거들처럼 여행 다니고 개인적인 경험과 느낀 점을 적은 적도 있지만, 와후, 조회수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안 나와서 굳이 힘들게 쓰고 지우고 할 바에는 차라리 안 쓰는 게 낫겠다 싶어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여기서 돈 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정보글을 적겠다던 초심은 옛 저녁에 잃어버린 지 오래다. 게다가 작년 겨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브런치 공모전에 도전했다가 처참한 글솜씨 때문에 참가상도 못 받는 바람에 글 쓰는 동기 부여가 아예 사라져 버렸다.




어쨌든, 드디어 쇼죠르노 (이름은 거주 허가증인데, 캐나다로 치면 퍼밋이랑 동급인 듯하다.)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랑 밀라노는 그래도 신청까지는 무리 없이 할 수 있는데, 나폴리에서 소죠르노를 신청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합법적으로 들어온 이민자뿐만 아니라 불법 이민자도 그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그건 걔네 사정이고, 나는 외국인 입장으로서 정말 이민국 경찰서는 갈 때마다 새삼 기분이 더러워지는 곳이다. 롤(아케인 버전)로 치자면 필트오버에 살다가 자운으로 내려온 느낌이랄까.


시민 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서 0.1초의 찬스만 있으면 바로 새치기해 대는 다른 외국인들과, 이완용 앞잡이 마냥 같은 외국인이면서 완장차고 가축 구별하듯 으스대며 골라서 받는 외국인 이민국 직원들, 좌천되어 온 것 마냥 세상 꺼져가라 한숨 쉬고 말 안 듣는 동물.. 아니 외국인들을 향해 혐오감 조성하는 소리를 거리낌 없이 꽥꽥 질러대는 이탈리아 경찰들의 모습을 하루 중일 기다리면서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들과 동화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던전 입구에는 온갖 잡몹과 초보들이 정신없이 싸우느라 그런 난리도 없는데, 던전에 막상 입장하면 한산하고 조용하다. 농담 따먹기 하는 직원들도 많고. 창구에 앉아있는 경찰들은 그나마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잘 얘기해 주더라.


이탈리아어를 못하면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것이다.


여전히 직원 수에 비해 몰려드는 이민자들의 문제 때문에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직원들도 많다. 직원들끼리도 말다툼을 살짝 할 때도 있고, 창구 앞 경찰들은 앞에 손님 (그러니까 외국인인 우리가 있든 말든 어차피 못 알아듣겠지 마라며) 커피를 홀짝이며 잠깐 쉬었다가도 옆 창구 경찰과 어제 잤던 여자가 얼마나 괜찮았는지 거리낌 없이 얘기하더라. 남녀가 뒤엉켜 서로 안고 있는 건 동료심이 너무 넘쳐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렇다고 치자. 그러다가 뒷덜미에 키스하는 것을 보고 나면 내가 지금 일 때문에 경찰서에 온 게 맞나 잠깐 헷갈리더라.


아차차. 혹시라도 색안경 낄까 봐 덧붙이자면, 물론 모든 이탈리아 경찰관들과 직원들이 못 된 건 아니다. 먼저 다가와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어디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는 직원도 있고, 제 작년에 경찰서 뺑뺑이 돌 때 너무 힘들어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안타까웠는지 직접 경찰서장이랑 연결해 주며 괜찮다고 다독여주던 경찰들도 많았다.


어쨌든 오늘은 서류통과 무사히 잘 되었다.


서류와 사진 내면 경찰이 확인하고, 그다음 서류 확인을 위해 간단한 질문을 하고 그에 맞게 성실히 대답한다. 그리고 또 한참 기다리다 보면 확인 서류를 준다. 이때 꼭 그냥 사인하고 내지 말고 이름, 생년월일, 주소등 개인 정보 반드시 확인하자. 내가 이탈리아에서 서류 냈을 때 99프로 오류 나서 항상 그 자리에서 고쳤다.


내 옛날 글 보면 잘 알겠지만, 외국인 정보라서 그런가 창구에서 서류 작업하면 항상 오타 났었다. 21년도에 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는 내 여권 보고 똑같이 영문 치면 되는 거라 어련히 잘 알아서 했었겠거니 해서 대충 확인하고 사인했는데 알고 보니까 오타 나서 뒤늦게 바꿔달라고 요청했더니 왜 이제 와서 말하냐며 오히려 그쪽에서 나에게 성질냈었다. 아쉬운 건 나니까 오히려 내가 사과했었어야 됐었다. 그러니 무조건 서류는 받을 당시에 아무리 옆에서 빨리 내라고 압박받아도 무조건 확인하고 싸인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한 30분 정도 기다리면 다시 다른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는데, 이번에는 남편도 같이 못 들어가고 외국인 세 명만 다른 좁은 방에 갇히게 된다. 셋 다 두리번거리면서 상황 파악하는데, 딱 이게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끔 영화나 다큐멘터리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서 심문조사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를 여과 없이 잘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방은 비좁고, 경찰들은 당연히 못 알아들을 거라며 손짓으로 오라 가라 거리고, 그 와중에 자기들 얘기하느라 바쁘고.


그나마 내 담당은 무례하진 않았다. 오라는 말에 허둥지둥 가서, 사인하라 그러길래 사인하고, 곁눈질로 지문 찍길래 손에 상처 나서 감싸뒀던 밴드를 없앴다. 여전히 피는 났지만 설마 피 보고도 상처를 누르겠어 싶었는데 여러 번 지그시 누르더라 ㅠㅠ 너무 긴장해서 아픈 것도 못 느꼈다. '에라이! 내 피나 묻어라!'


어쨌든 그러고 나면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문이 안 열린다. 앞서 가던 남자는 안 열린다고 앞에서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길래 한 번 더해보자고 같이 밀어대니 드디어 열렸다. 분명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걸 못 알아들은 건지 그렇게 문 열고 쭉 직진해서 그 외국인 남성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또 몇십 분을 기다리다 보면 드디어 확인 종이를 준다. 종이에 쓰여있는 데로 온라인에서 확인하라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는 도망치듯 이민국을 나왔다. 뭔가 대단한 것을 해결했지만 막상 둘 다 너무 지쳐서 파티고 뭐고 뭘 할 염두도 못 냈다. 아마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제발 1년은 안 넘었으면 좋겠다) 퍼밋 카드가 나올 텐데, 그때는 다 같이 파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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