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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체류신고하기

이탈리아어로 하면 ospitalità, 레지덴짜랑 좀 다릅니다.

by 제시카

그렇게 퍼밋을 등록하고,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을 주고 저 멀리 떠나가버린 변호사를 기다리다 지쳐 며칠 뒤 우리끼리 체류신고하러 근처 경찰서로 갔다.


한 달 내내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우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변호사의 자문을 구하러 그의 사무실을 여러 번 찾아갔으나, 우리 보고 걱정 말라며 괜찮다며 돌려보내거나, 어디 코너에 숨어버리거나, 떡하니 차도 있고, 사람 실루엣도 보이는데 문을 안 열어줘서 도대체 체류신고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아니 돈도 아직 안 냈는데 페이 전에 밥값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이탈리아에 살다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상황을 정말 많이 마주치게 된다. 법이나 규칙이 캐나다처럼 한 번에 체계적으로 나뉘지 않고, 마치 누더기 옷을 입은 것 마냥 덕지덕지 붙여져 있어서 귀에 끼면 귀걸이, 코에 뀌면 코걸이 같은 유연한 기준이라 담당 사람만 잘 만나면 일사천리로 해결될 수 있다.


어쨌든 변호사의 조언대로, 퍼밋 신청하고 난 뒤에 체류 신고 하는 건 난이도가 훨씬 쉬웠다.


이번에는 경찰서 가서 왜 우리가 여기서 체류 신고를 하고 있는지 해명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분명 비자 신청할 때 이탈리아에 가서 제일 먼저 하라고 해서 간 건데도 막상 이탈리아 경찰서에 가면 귀찮으니까 어떻게든 안 해주려고 버티는 경찰/사무관들을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몇 년간 밀어붙여서 받아오긴 했지만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퍼밋 신청서가 있고 체류 신고하러 왔다 단 한마디로 모든 게 정리가 되어 우리는 정해진 순서만 기다리면 되었다.


다만, 이탈리아 경찰서는 시민 보호뿐만 아니라, 운전면허 등록증과 심지어 여권까지 범죄 조회 기록까지 경찰이 일일이 확인하므로 엄청나게 바쁘다. 엘로우 키트 (퍼밋 신청서)를 제외한 외국인용 서류 관련 인터뷰는 사이트에 예약 기능조차 안 만들어서, 경찰 서류 작업 하는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미리 가서 워크인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우리 역시 전날 새벽까지 밤새서 일하고, 3-4시간 잤다가 아침 댓바람부터 아침도 못 먹고 헐레벌떡 뛰어갔다. 아침 일찍이라 그나마 근처 스트릿에 파킹을 했는데, 추워서 차 안에서 기다리려다가 다른 사람들과 눈치 게임을 하며 하나둘씩 경찰서로 떠나길래 우리도 놓칠세라 얼른 그들을 뒤따라 갔다.


원래는 경찰서 밖에 서있다가 벨 누르고 용건 말한 뒤 통과되면 안에 들어갈 수 있는데, 당일에는 추워서인지 아님 그날 유독 담당 경찰관이 나이스해서 그런지 모두 경찰서 안에서 덜 춥게 기다릴 수 있었다.


운전면허 박탈 당해서 날짜 맞춰 갱신하려고 온 사람, 여권 범죄 조회 신청 때문에 미리 예약한 사람들, 심지어 경찰서에도 강아지를 데리고 온 커플도 있고, 각자 사정으로 인해 그날 그 시간에 경찰서에 모인 나폴리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언제 될지도 모르는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2시간이 안되게 담당 경찰서 안의 사무관이랑 얘기할 수 있었다. 장담컨대, 내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3년 동안 처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높이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영어도 잘하고, 하나하나 2-3번 꼼꼼히 체크하던, 난생처음 보던 유형의 진짜 일하는 경찰서의 사무관이었다. 정말 젠틀했다.


우리는 긴장이 좀 풀어져서 조금의 농담 섞인 대화도 했는데, 갑자기 다른 동료가 들어와서 다른 동료 경찰관이 병원에서 돌아가셔서 장례식 가야 된다고 얼른 가야 된다고 하길래 우리는 방해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한 뒤 (실제로 우리가 방해했다기보다는 워크인이라 예정에 없던 일을 담당 사무관이 하고 있었으므로 감사의 의미로 얘기한 것)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사무관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면서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그렇게 작업을 마치고, 도장과 사인이 담긴 ospitalità 증명서를 드디어 얻게 되었다.


이민국과 경찰 사무관들의 공통된 조언에 따르면:

1. 퍼밋 카드 나오기 전에 여권 갱신해도 된다 (임시 여권 발급해 달라고 요청하라는데 캐나다가 해줄지가 미지수)

2. 외출 시에는 항상, 여권 복사본, ospitalità 복사본, 퍼밋 신청서 복사본, 결혼 증명서 복사본을 가지고 다닐 것


남편이 이제 주중에 경찰서 온라인으로 ospitalità 업데이트만 해주면 된다.


이렇게 또 한건 해결했다.


다음은 이탈리아에서 캐나다 여권을 갱신해야 된다. 직접 방문하지 말고 무조건 우편으로 여권 원본을 보내라는데 왜 이따구로 규칙을 정해놓은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분실하면 나한테 책임 지울 거면서.... 아휴 산 넘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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