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악을 울려라! 파티를 열자!
세상에! 이탈리아에 이민 온 지 3년째 되는 해에 드디어 체류 허가증을 받았다!!
큰 일 해낸 만큼, 일하느라 바쁘신 시아버지 제외하고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함께 넷이서 다 같이 이민국 경찰서에 가서 누구보다 빠르게 받고 후다닥 나왔다.
사실 허가증 받은 지는 며칠 됐지만 남편과 나 둘 다 현생에 허덕이느라 근사한 파티는 못했다. 대신에 근처에 괜찮은 중국 마트에 가서, 비싼 아시안 음식을 처음으로 100유로만큼이나 잔뜩 사서 평소처럼 아껴먹지 않고 그날만큼은 먹고 싶은 음식들을 한꺼번에 잔뜩 차려서 우리 둘이 돼지처럼 다~ 먹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거 시민권도 아니고 영주권도 아니고 체류 허가증 가지고 난리 법석이네."
이탈리아에 사는 교민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텐데... 설명할 길이 없어 참 답답하다. 오죽하면 내가 캐나다에서 시험 통과하고 인터뷰 통과까지 해서 겨우 얻은 시민권 받았을 때보다도 더 벅찬 감정이라고 말할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내 글보고 이탈리아 남부로 워킹홀리데이 할 생각 있는 사람들은 절대 오지 말길 바란다. 오더라도 로마나 피렌체 아님 밀라노 같이 큰 도시에 이미 많은 외국인이 사는 동네에서 먼저 시작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체류 허가증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도 웬만하면 변호사 끼고 접수하는 게 여러모로 정신에 이롭다. 물론 많은 이민자들이 직접 가서 접수하지만, 그러면 당신도 아마 보지 않아도 될 꼴, 또는 겪지 않아도 될 꼴을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상 파트너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지금도 이민국 경찰서를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치가 떨린다. 웃긴 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이라면 모두 겪는 일이다. 오죽하면 제일 유명한 밈이 "오늘 나 이민국에서 안 울었으니, 저번보다는 낫네'니까.
변호사와 함께 접수를 하고 알려준 웹사이트에서 종종 확인을 했다. 일단 온라인으로 접수 완료 되었으니 카드 픽업하라고 안내문이 떴었고, 몇 주 안되어서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따로 받았다.
약속 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서 1시간은 근처에 주차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서 여유롭게 줄을 설 수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다리는 줄이 길지 않았다. 아침에는 접수 위주로 받는 것 같았고, 오후에는 대부분이 체류증 받으러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오늘은 또 어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입씨름을 해야 하나 걱정했던 우리 둘에게는 운이 좋은 날이었다.
저번처럼 경찰이 우리 앞을 막지도 않았고, 여러 나라에서 온 외국인들이 서로 눈 치켜세우며 새치기를 하지도 않았고, 항상 만나던 입구 쪽 아저씨가 자기 친구들 들여보내준다고 우리한테 지 친구들 부르라고 불공정하게 억압적으로 시키지도 않았다.
온 목적을 말하니, 싱겁도록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받기 어려웠던 번호표를 바로 받고, 한 5분 정도 지났을까?
한 청년이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복도에서 끌려 나왔다. 그 외국인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경찰차를 발로 찼지만, 우리 둘 다 그들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워서 정확히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 사람들을 뒤로하고 마침 스피커에 나온 숫자에 맞춰 스무 명 남짓한 외국인들이 한 번에 입구에 입장했다.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다른 직원에게 임시 허가 체류증 종이와 번호표를 빼앗기고... (음.. 정중하게 달라고 했지만 행동은 여전히 우악스러웠으므로 비꼬아서 얘기하련다.) 좀 만 더 기다리면 바로 창구로 갈 수 있었다.
그 좁은 창구 복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기다리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긴장 속에 대답하느라 정신이 없고, 어떤 친구는 불행하게도 직원이 실수했다고 다시 나가라고 해서 아무것도 못 받고 그렇게 터벌터벌 나간다. 다행히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별 탈 없이 빠르게 체류증을 받고 나갔다.
그렇게 우리 차례가 오고, 캐나다 스마일을 하고 먼저 인사해 줬더니, 직원이 감동받았는지 다른 외국인들과 다르게 질문해도 잘 대답해 주고 심지어 체류증 커버도 씌어줬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여권이나 문서 체크를 또 하지 않고, 바로 지문 등록만 하고 카드 받고 나왔다.
그동안 울고불고 난리 쳤던 거 비해 제일 빠르고 간단하게 해결 한 날이었다.
그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환한 출구로 나오는 길은 새삼 구름에서 걷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래서 이제 이탈리아를 즐기기만 하면 되냐고 묻는다면 만만의 콩떡이지요.
이탈리아와 결혼한 외국인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주소 등록을 한 날부터 2년 뒤 이탈리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으므로, 이번 주에 벌써 동사무소(?) 같은 곳에 가서 얼른 주소 등록하고 한 건 해결했다. 다행히 담당 직원 아저씨가 굉장히 친절했다. 체류증 받고 나서는 정말 모든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고 있다.
대략 한 달 정도 기다리면 나도 이탈리아 주민 카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 나면 병원, 은행, 고용센터 같은 곳에도 신청해야 된다.
이제 반 정도 온 것 같다.
솔직히 예상했던 기간보다 훨씬 빨라서 마음이 좀 놓인다. 잘하면 이 번 연도에 이탈리아에서 정착하기 위한 초석은 잘 다져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