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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Feb 24. 2019

지하생활 17년 차

#저녁 있는 삶은 중요하다.

문제] 비타민 D 결핍이 불러오는 부작용은?

1) 비타민 A가 생각나다.

2) 비타민 B가 더욱더 보고 싶다.

3) 비타민 C, E, K가 뭘까 궁금해진다.

4) 구루병


답은 쉽지 않은가? 대학 때 시험공부하면서 외웠던 기억이 난다. 비타민D는 알파벳 ‘D’처럼 굽어 있는 모양=등이  구부러지는 것 즉, 구루병. 이것 말고 기억나는 것은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이것이라도 뇌에 제대로 박혀있으니 말이다. 왜 갑자기 비타민D가 생각났을까? 나의 출퇴근 교통편은 지하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특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에스컬레이터가 나를 자극했다. 어두 컴컴한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 이것 때문이다.


하루 시작과 마감을 알리는 지하통로로 가는 길

나에게 지하생활은 도대체 언제부터인가? 직장을 다니면서 본격적인 지하생활을 한 것 같다. 직장은 땅 속 깊은 곳 지하 2층에 있다. 지상에서 몇 미터 아래지? 건물 한 층은 약 3미터다. 그럼 지상에서 약 6미터 아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요새는 예전과 다르게 암을 치료하는 곳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여기는 방사선 치료를 하는 곳이다. 이곳은 장비 하중, 방사선 차폐 등의 이유로 보통 지하층에 위치해 있다. 그렇지 않은 곳도 있겠지만, 아무튼 나는 지하에서 일한다. 하루 8시간 근무와 특근시간 등을 포함하면 집에 있는 시간 빼고 거의 모든 하루를 지하에서 생활한다.

 

<지하생활 17년 차>

 

요새 눈이 침침하다. 내 나이에 벌써? 설마. 나는 아직 젊다. 핑곗거리가 뭐 있지? 지하생활을  한탄하고 싶다. 퇴직할 때상상해 본다. 아마 좀비와 같이 윤기 없는 피부와 머리털. 아집과 고집만 남은 뇌와 마음 덩어리. 손과 발을 포함한 모든 감각기관이 더욱더 예민해질수록 부족한 남성호르몬을 갈구하는 한 인간에서 눈은 더 작아진 <두더지>가 되어 있을지 모른다.

 

비타민D가 궁금해졌다. 구루병 말고 뭐가 더 있나? 인터넷 검색을 했다. 정보는 많다.


‘뼈와 치아를 건강하게 해주는 칼슘과 인 흡수에 꼭 필요한 지용성 영양분으로 근육, 심장, 뇌 기능 활성 도움’


부족하면 뼈가 약해지고 특히 치아 관련 충치, 감염이 생긴다. 또한, 만성피로, 체중 증가, 천식, 감기, 만성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Chrohn’s disease), 심리적 우울증. 너무 많아서 하나만 기억해야겠다.

‘비타민D=구루병’


부족한 비타민D는 햇볕을 쬐이는게 제일 좋다고 한다. 지하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달을 볼 기회는 많지만, 글쎄 우리 지구에는 없어서 안될 높으신 분인 태양님을 볼 수 있을까. 특히 겨울철에는 더 심하다. 바깥 생활은 어두운 새벽에 시작해서 어두운 저녁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무작정 우울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가끔 <저녁이 있는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마저도 없다면 지하생활을 청산하고 싶은 갈등을 ‘사직서’라는 봉투에 담아 항상 가지도 다녔을지 모른다. 그에 비하면 비타민 D는 중요하지 않다. 그 정도야 뭘. 이제야 <지하생활 17년 차>에 중요한 걸 알았다.


<저녁이 있는 삶>


뭐든 부족하거나 지나치면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지하생활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비타민D 정도야 이겨낼 수 있다. 다만 갈수록 <저녁이 없는 삶>이 자주 생기는 게 못내 걱정이다. 사람은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몸과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나의 가치는 <지하생활 17년 차>와 <비타민D> 따위가 아니다. 태양처럼 신과 같은 존재인 아내와 창틀에 환하게 비추인 기분 좋은 햇살과 같은 아이들과 오손도손 저녁을 같이 하는 게 전부다.



-두더지가 되고 싶지 않은 <지하생활 17년 차> 직장인


2019-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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