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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Feb 21. 2019

포경 수술한 아들

#기억의 습작

오늘은 기다리던 비뇨기과 상담하는 날. 아들의 첫 수술이 될 포경 수술하는 날이다. 예약시간 11시, 막내 빼고 우리는 집 근처 인근 비뇨기과 의원을 찾았다. 아내는 밤샘 근무 후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한 숨도 못 잤겠지? 병원에서 아내와 만났다. 많이 지쳐 보였다. 그렇지만 아들의 포경수술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아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의료진과 상담을 했다. 나는 의사에게 물어봤다. “무조건 포경수술이 정답이 아니지 않습니까. 흔히 알고 있는 것 말고 뭐 지인이 말하길. 요새 <슬리브 포경수술>이라는 것도 있다던데. 좋은 방 밥이 있나요? 나의 질문에 의사는 잠시 당혹해하는 눈치였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약 10분간 설명을 해 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사뭇 달랐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단 수술은 무조건 칼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표피 제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이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잘 몰랐던 거다.


의사는 우리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사람들이 잘 못 알고 계시는 부분이 있어요. 슬리브, 해바라기, 링, 확대 수술 등은 모두 무엇인가 제거하고 봉합하는 과정이 필요한 수술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상담과 수술 여부를 진행하지만, 아이들 같은 경우는 쉽지 않고 개인적으로 권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도 어렵고요.”


나는 이왕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뭔가 잘 못 알고 있었나 보다.


어찌 되었든 아들은 혼자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뒷모습이 조금 처량해 보이기는 했다. 나는 뭔지 모를 웃음과 함께 또다시 속으로 생각했다. ‘왜 이 수술을 해야 하지?’ 현재, 포경수술은 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아직도 논란 중이라고 하던데.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까?’ 이미 시작한 수술을 놓고 쓸데없는 고민을 했다.

포경수술 찬성론자는 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반대론자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모로서 특히 아빠인 나의 입장은 찬성이다. 그 이유는 위생 때문이다. 아무리 관리를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경험상 위생을 장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것보다 신경 쓸게 얼마나 많은데.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아들은 수술 중이다.


약 30분 정도 시간이 흘렸다. 나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는 아내는 이렇게 말하며 걱정 어린 눈빛을 보냈다.


“아들이 아픈가 봐. 소리 지르네.”

“수술인데 당연히 아프겠지. 걱정 마. 죽지는 않아.”

“어처구니없네. 그게 아빠가 할 소리야!”

괜히 말했다.



나는 지난 과거 내 나이 10살인 1987년 겨울을 떠 올렸다. 전라남도 광주, 농성동에 위치한 고가도로 옆 정형외과(상호는 기억 안 남)에서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 수술대에 누웠다. 주사할 때 엄청 아팠던 기억부터 거의 모든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무언인가 자르고 실로 꿰매는 작업. 말 그대로 작업을 당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그곳이 매우 아팠다. 나는 어머니께 자주 물어봤다.

“왜 남자는 이걸 해야 하는 거야? 너무 아픈데?!”

그러나 나의 궁금증은 높아질수록 남자로서 태어난 것에 대한 원망 또는 분노만 생길 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기억이 나는가 바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 만큼 나이가 먹고 세월히 흘렀다. 아직도 분명한 것은 이 수술만큼은 부모가 챙겨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나중에 커서 혼자 하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요새는 포경 수술하면서 확대 수술도 한다던데.” 이 말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고 확대하면 어디다 쓸지. 배우가 되는 것도 아니고 잘 모르지만 기본에 충실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돼지와 친구


직원의 안내로 수술방에 갔다. 아랫도리가 탈의된 반나체로 누워있는 아들을 봤다. 일단 웃음이 났다. 또한 이놈이 이렇게 많이 컸는지 새삼 느꼈다. 이후 직원의 설명과 함께 그 유명한 종이컵을 그곳에 끼웠다. 조금 뒤뚱거리는 아들을 부축하며 우리는 병원에서 나왔다. 점심시간이다. 화창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일의 낮이다. 비타민D가 정말 그리웠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아들에게 특별히 해줄 게 없었다. 순간 기억나는 단어는 <피자와 콜라>다. 이것이라도 아빠가 사줘야 할 것 같았다. 오전에 아들이 물어봤었다.


“아빠! 10점이 최고 아프다면 포경수술은 얼마야?”

“음~ 8점!? 별로 안 아파”

그래서 방금 수술을 마치고 나온 아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아픈가 보네. 뭐 생살을 잘라낸 거니 어찌 안 아플 수 있을까. 뭐 그래도 몇 번 소리 지르는 것 치고는 잘하고 기특하기만 하네. 다행이지 울거나 화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이 녀석도 이제 남자로 진화하고 있다. 옆에서 살짝 보아하니 턱수염도 제법 보였다.


“나 진짜 이거 아픈 거 10점 넘는 것 같아. 내 인생에서 제일 아파!”


“축하한다. 아들. 이제 너도 껍데기 없는 순전한 귀두를 가진 포경 수술한 남자가 되었구나.”


시간이 약인지라 이내 아픔은 잊힐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네 그곳이 전과 달라졌다는 걸 느낄 거야. 피자 많이 먹고 2주 후 실밥 빼자. 수고 많았다. 아들.


아들의 포경수술은 나에게 기억의 습작이 되었다.


201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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