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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Feb 26. 2019

<아무렇지도 않은 자>가 되고 싶다.

#업무에 집중하고 힘내자.

최근 정기인사발령이 있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행사다.

인사발령 공문을 확인하면서 나는 생각했다.  


'사람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눠보면 어떨까?'  


첫 번째 부류 <기뻐하는 자>다. 이 부류는 진급 혹은 기대했던 곳으로 발령되는 경우다. 이 중 월급이 올라가는 진급이 최고다. 연봉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은 연금이다. 지금은 별 차이를 못 느낀다. 그러나 퇴직할 때 고려될 이 자금은 무시할 수 없다. 노후자금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진급'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흥분시키고, 설레게 하며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너무 빨리 진급하면 빨리 퇴직해야 해. 너무 빠르면 탈 나. 그냥 무덤덤하게 일만 하는 게 좋아. 무슨 놈의 진급이 좋아?" 이 또한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보통의 다수가 생각하는 긍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손을 들고 싶다.


두 번째 부류는 <부정하는 자>다. 이 부류는 <기뻐하는 자>와 반대다. '내가 왜? 어째서 나는 안돼? 이게 말이 돼?' 이들은 몇 년째 누락되기를 반복하여 결국 진급을 못했다. 현재의 근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도 마찬가지다. 평가는 처참하고 침울하다. 심지어 서글픈 현실에 복받쳐 올라오는 우울한 감정이 생긴다. 그러나 이를 부정하고 자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상처를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짠하고 슬프다. 그러나 평가를 받지 않았는가. 인정해야 한다. 설사하기 싫다고 해도 해야 한다. 그게 사회다.


세 번째 부류는 <아무렇지도 않은 자>다. 이 부류는 일단 관심이 없다. 진급에는 도통 자신과 무관한 상태다. 아마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년생인 경우가 이에 해당될 수도 있다. 아니면 진급 자체가 무의미한 경우, 가령 비정규직, 임시계약직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또 다른 상황은 진급 자체가 될 수 없는 구조에 놓인 말 그대로 삼면 초과인 경우다. 이는 인원 부족, 관리자 다수 포함, 잦은 인사이동 등과 같은 사각지대인 경우를 말한다. 결국 '진급' 혹은 '인사이동'은 이들에겐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다.


이 시점에서 스스로 자문해 본다.

'나는 어느 부류에 해당되는가?'


나는 <부정하는 자>였다. 진급을 못했다. 첫 해 누락은 마음적으로 그냥 그랬다. 그다음 해 또 다음 해, 이렇게 누락되다 보니 서서히 나는 모든 걸 부정하게 되었다.

'왜? 내 평가는 이렇지? 열심히 했는데. 뭐 지?'


그제야 <아무렇지도 않은 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만큼 직장생활을 많이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나에게는 무관심보다는 더 집중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확인해야 할 시기를 놓쳤다. 바보다. 스스로 나를 체크하지 않았다.


사람은 자기애(愛) 없이는 한순간도 삶을 살 수 없다. 이것은 매우 원초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정하는 자> 시기에 진정 자기애를 느꼈다. 현실을 부정하다가 인정하고, 자기 실망감에 빠지다가 또 일어서길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진정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


'진급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하지 말자. 누구를 비교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것은 스트레스 일 뿐이야. 현실에 놓인 숙제들을 잘 요리할 수 있어야 해. 뭐 인생에 있어 진급이 전부야? 쓸데없이 말이야.'


너무 고마웠다. 자기애를 살짝 느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이 느끼면 개인주의나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 때문에 정말 살짝 느꼈다. 이 점은 확실하다. 아직까지 조직에 잘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내가 고맙게 느꼈던 양찬순 작가의 저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싶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나와 상대방에 대해 지나친 기대치는 갖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면 자기 비하와 실망감에 빠질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만의 자긍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나만 생각하지는 않나? 가끔 스치는 생각은 이네 현실로 다가왔다.

동료 후임의 말 한마디는 이렇다. "선생님이 진급하시고 올라가셔야 됩니다. 그래야 저희도 희망이 생기지 그렇지 않나요. 의욕이 떨어집니다."


나만 생각하면 지금 업무에 최선을 하다면 그만이다. 진급 따위나 인사이동은 신경을 꺼버리는 다시 말해 <아무렇지도 않은 자>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 물론 <기뻐하는 자>가 될 수도 있지만, 이는 불가능할 것 같다.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서글프지만 어쩔 수 없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떠날 수 없다. 상환해야 할 빚이 많기 때문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질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나만 생각하기에는 이쁘고 아름답고 항상 듬직한 후임 녀석들이 있다. 매우 아름답지는 않지만, 생활해 보니 이만한 녀석들도 없겠다. 그만큼 그들을 위해서도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


후임을 위해서 해 줄 게 없다. 그들도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느끼는 <부정하는 자>의 침울하고 우울하고 회의적인 감정에서 한 마디 말하고 싶다.


스스로 자책하지 말고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그냥 지금의 일에 충실해라. 너무 이따위 진급과 인사이동에 신경을 쓰다 보면 너무 화가 날 테니. 그렇다고 조직을 의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현재 일에 대한 사명감까지 내려놓아서는 안된다. 의욕상실로 인하여 자신의 가치 있는 업무를 등한시하거나 가치를 비하시키면 되돌아오는 것은 하나다.


나중에 그들과 똑같아진다. 불만 가득한 선배 혹은 상사처럼.

동료 아내가 준 초코 선물

요새 이런 감정이 생겼다면 당장 <부정하는 자>에서 탈출하길 바란다.

스스로에게 좋지 않다. 업무에 집중하고 힘내자.



-술렁이는 조직 분위기에 한 마디 하고 싶은 <부정하는 자>


2019-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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