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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Sep 22. 2019

학생 논문

창조의 즐거움

가을이 짙어지고 있다. 한 해가 떠나갈 날도 다가오고 있다.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우리를 괴롭힌다. 가을바람이 차가울수록 무엇을 했는지 따져본다. 그리고 집착하게 된다.


올 한 해 농사 잘했나요? 연구를 하고 논문이라는 결과를 내는 사람들이 주로 듣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연구자 혹은 교수들이 그렇다. 농사에 대한 부담감. 나는 이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마음은 편하고 좋다. 왜냐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교원도 아니고 교직으로 이직할 마음도 없다. 대학원 시절과 다르게 이제는 논문에 대한 압박이 없다. 하지만 박사이며 스스로 연구자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마냥 압박에 속하지 않았다고 즐거워할 수는 노릇이다. 작은 압박감만 주머니에 담고 다닌다.


지난 2011년부터 석사에서 2018년 박사를 마치면서 꾸준히 연구를 했고, 논문이라는 결정체를 만들어냈다. 너무 열심히 달려서 번아웃(Burnout)이라는 감정을 수시로 느꼈다. 정말 열심히 달렸다. 그래서 나를 위해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스스로 리셋을 해버리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학생 논문지도 때문이다.


대학생이면 모두가 논문을 쓰지 않는다. 강요도 있겠지만 절반은 선택일 것이다. 나는 매주 한 번씩 강의를 한다. 불행인지 운명인지 학생들이 논문을 써야 하는 학년과 함께한다. 그러니 학생들이 논문을 쓰고 싶어 하고 써야 하는 상황을 못 본채 할 수 있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내 성격이 문제다. 올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학생들의 논문지도를 맡으며 끝이 났다.


대충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대충 하면 결과물이 엉성해질뿐이다. 하지만 그러면 안된다. 논문에는 내 이름이 들어간다. 학생들과 수십 번 논문을 작성하며 내 이름 석자가 안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러 빼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 항상 학생 논문은 내 기준에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해 버리면 안 된다. 순간은 편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봐야 기억이 남는 법이다. 논문도 할 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는 2개의 논문팀을 지도했ㄷ. 2개라니...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다. 논문은 연구를 하면서 작성한 연구 노트라고 생각하면 쉽다. 단지 구독자를 위해 규정에 맞게 잘 정리하는 게 다르다. 제출 기간이 다가왔다. 단지 모자란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다. 논문 제출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들 마음이 불안하다. 나만 빼고... 주말이다.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논문 수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간에 했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날 시기다. 가을이면 항상 그렇다.  마지막은 참 힘들다. 논문이 좀 그렇다. 마지막은 반복해서 확인하고 수정해야 한다.


학생들은 주말에도 열심히 논문을 수정하고 있다. 계속 수정 요청을 받고 수정하고, 또 확인하는 반복된 작업을 하고 있다. 보통은 한두 번 수정으로 끝낸다. 그냥 학생 논문으로 마무리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내 이름이 안 들어가면 그렇겠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최대한 대충이라는 단어를 배제해야만 한다. 내 기준을 학생들에게 맞추라고 하기는 힘들다. 내게 학생 논문은 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논문이란 백지에서 시작다.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결과는 어떨까? 이득인가 손실인가. 논문은 정량적 수치로 결과를 얻고 주장을 말한다. 반대로 백지에서 시작한 연구 과정은 수치로 환산하기 어렵다. 그러기에 이득과 손실을 말하기 곤란하다. 특히 학생 논문은 그렇다. 그럼 학생에게 논문이란 무엇인가?


만의 개똥철학과 경험으로 이렇게 답하고 싶다. <창조의 즐거움>


와 함께하는 학생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말합니다.

처음 논문을 써야 하는 그때를 기억하세요.

백지상태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했던 그때를 기억하세요.

진도가 나아가지 않을 때 스스로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을 간직하세요.

부족하지만 무엇인가 만들어가는 그 시간을 훑어보세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종이 몇 장에 담긴 노력을 뿌듯하게 즐기세요.


만일,  느낌이 아니라면 당신은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아직 학생이니까. 단, 다음논문 쓸 일이 있다면 꼭 제대로 쓰세요. 욕먹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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