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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13. 2019

푸른 의자에 앉아

그 자리에 앉아 고개를 좌측부터 우측으로 돌려봤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아주 커다란 수평선 하나가 보였다. 그 위로는 깊고 넓은 푸른 하늘이, 아래는 하염없이 평온한 푸른 바다가 존재하고 있었다. 푸른 의자 앞에는 커다란 해변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일광욕을 즐기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제 곧 결혼식을 앞둔 멋진 예복의 신랑과 하얀 웨딩 드레스의 신부. 사진 찍기 좋은 명당을 차지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학생들. 미리 깔맞춤 한 옷을 사진 한 장에 이쁘게 담으려는 친구들. 하얀 모레 사장에 바캉스를 즐기는 외국인들. 파도에 몸을 맡겨 지구가 선사하는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는 서퍼들. 이곳이 내 세상인양 모레 성을 쌓고 있는 아이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코끝에 퍼지는 커피 향에 취해 잠을 청하는 여행자들. 바쁜 도시에서 탈출해 잠시 여유를 갖는 직장인들. 그 사이,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에 몸을 싣고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 손자 손녀와 함께 이 좋은 풍경을 기억하려는 어르신들. 아직 세상을 모르는 천사를 안고 바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빠들. 두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시원한 해변을 걷는 엄마들.


푸른 의자와 맞닿은 수평선은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행복한 별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야말로 모두를 품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조심스레 앉아서 그 느낌을 감상했다. 그리하면 나 또한 행복하지 않을까. 수평선 저 멀리 작은 하얀 점 하나는 아주 천천히 정말 천천히 미끄러지고 있었다. 모든 시간이 멈춘듯했다. 눈을 감았다. 파도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제주 월정리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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