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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12. 2019

삼색

보다 듣다 느끼다



너를 이렇게 보게 돼서 너무 좋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제법 어울리는 산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뻥 뚫린다. 너를 보기 위해 우리는 여기까지 올라왔어. 허벅지가 터질듯한 고통과 숨이 넘어가는 괴로움을 이겨내면서 말이야. 비롯 힘들었지만 너의 장엄한 그 모습이 우리 앞에 있어서 너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고성능 카메라보다 더 정교한 내 두 눈에 너를 담아서 기분이 정말 좋다.


너를 이렇게 듣게 돼서 너무 좋다. 길을 걷다 멈췄어. 내 귀를 의심했지. 파도가 절벽에 부딪치는 소리 때문이야. 내 가슴을 울리는 너는 따사로운 가을 햇볕과 함께 내가 흘린 땀을 식혀줬어. 분명한 건 시원한 바람처럼 파도가 내 온몸을 씻겨주어서 다행이야. 그뿐일까? 방금까지 쌓인 피로와 묵은 걱정을 잠시 한순간 잊게 해 주었지. 철썩대는 너의 외침이 내 가슴을 다시 울리게 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


너를 이렇게 느끼게 돼서 너무 좋다. 땅과 하늘 아래 내가 앉아 있는 이 시간을 나는 정말 소중하게 느끼고 있어. 네가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지금 나는, 허탈한 하루와 지친 일상을 탈출하여 작은 자유를 느끼고 있으니까. 이 기분 참 오랜만이다. 어제까지 나는, 갑갑한 빌딩 속에 개미처럼 열심히 일만 했었거든. 그래서 더 그런가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가 있던 그 자리를 돌아봤어. 푸른색과 초록색 물감으로 잘 그려진 화폭에, 내 작은 분홍빛이 제법 너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하다.


짧은 만남, 너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준 오늘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까? 아무래도 지금을 즐기는게 좋겠어. 우리가 함께한 짧은 추억이 있어서 너무 다행이다. 다시 말할게. 고맙고 너무 감사해.


사진 : 이로사 & 김솔내음 (제주 영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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