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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11. 2019

작은 생명

5년 전 어느 날,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들은 방금 합기도에 갔다 와서 그런지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맞은편 아내, 나를 자꾸 쳐다보며 무엇인가 말하려는 표정이었다.

“수상한데. 왜 무슨 일 있어?”

“저녁 먹고 이야기 좀 해요.”


내가 뭘 잘못했지? 스스로 자문하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은 일찍 귀가해서 이렇게 저녁을 먹고 있는데. 뭐지? 요 며칠 동안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그런가? 아니면 냉장고를 바꾸고 싶어서 내게 선전포고를 하는 걸까? 맛나게 먹고 있던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오빠. 나한테 할 말 없어요?”

“무슨 말? 아… 어제는 너무 늦어서 미안.”

부부 생태계에서 남편은 무조건 빌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계속 늦게 들어오면 당연히 미안해할 줄 알아야지!”

“알았어. 가급적 빈도를 줄이지 뭐.”

“아니. 빨리 집에 올 생각은 안 하고 밖에서 뭐하고 다녀요? 여자 있는 거 아냐?”

“내가? 돈이 있으면 분명 여자가 있을 테지만, 걱정하지 마. 그 정도 돈은 없으니.”


아내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봤다.

“또 할 말 없어요?”

“왜? 자꾸 귀찮게 하는 거야? 남편이 밖에서 술도 먹을 수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새벽에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봤다.

“가장이라는 사람이 정말. 자꾸 이럴 거면 나 집 나갈 거니깐. 그렇게 알아요!”

아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 멱살을 잡았다.


“당신! 나한테 잘할 거야? 말 거야?”

“당연히 잘해야지. 오빠만 믿어.”

“늙어서 찬밥에 물 말아먹을 생각 아니면 나한테 잘하세요!”

“당연하지.”

나는 고개를 돌려 아들 방으로 도망가려 했다.


“어딜 가요? 내 말 안 끝났어요!”

“어 그래? 왜 자꾸...”

“우리 아들한테 동생 생겼어요.”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잠시 시간이 멈추었다.

“사람이 왜 그래? 아무 느낌이 없어요?”

“아…”

“뭐야?”

“음… 생각지도 못해서”


아내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지울까?”

“말이라도 그런 말을... 하지 마. 이 사람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데.”

“근데, 왜 반응이 시원찮아?”

“당황했다고 했잖아. 그러니 쓸데없는 말 다시는...”

주눅이 든 아내를 보며 나는 말했다.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 앞에 애교 부리는 한 녀석이 있다.

“아빠. 나 이거 사줘.”

저 녀석이 바로 그 녀석이다.

아빠가 아들이길 원했던 그 녀석.



메인그림 : 김영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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