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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27. 2019

철창 안에 햄스터

햄스터 세 마리가 철창으로 된 커다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없는 게 없답니다. 물을 먹고 싶으면 철문 옆에 있는 물통을 찾으면 됩니다. 배가 고파도 걱정할 게 없답니다. 항상 먹을 게 있습니다. 밥통이 비워지는 법은 없습니다. 언제나, 시간에 맞춰 그들이 찾아왔기 때문이죠. 딱 지금이 그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밥통에 맛난 것들을 채워주고, 햄스터 세 마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때마침 작은 인간도 고사리 같은 손을 힘들며 소리를 지르고 손뼉을 쳤습니다. 엄청 좋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햄스터는 달리기 선수입니다. 다행히 우리 안에는 쳇바퀴가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달릴 수 있습니다. 뒷발에 힘을 주고 앞 발로 바닥을 짚으면 쳇바퀴는 엄청난 속도로 돌아갑니다. 햄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없이 달리게 됩니다. 지금, 갈색 피부에 길쭉한 몸집의 햄스터 한 마리가 쳇바퀴를 돌리고 있습니다. 땀을 흘릴 정도로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다. 갈색 햄스터는 쳇바퀴를 정말 좋아합니다.


쳇바퀴 맞은편에는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커다란 철문이 있습니다. 유일한 입구며 출구 인 셈이죠. 그 앞에는 흰털에 다리가 짧고 살이 찐 흰색 햄스터가 있었습니다. 이 녀석은 하루 종일 바닥에 뒹굴며 지내고 있습니다. 철문 앞에 있는 이유는 바로 옆에 밥통이 있기 때문이죠. 인간들이 밥통에 맛난 음식을 채울 때마다 흰색 햄스터가 제일 먼저 밥통을 차지했습니다. 그래서 몸이 자꾸만 뚱뚱해지고 둥글게 변해가는 모양입니다.


큰 인간과 작은 인간이 우리 셋을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큰 인간이 다가왔습니다. 이를 유심히 바라보던 보라색 햄스터는 무표정한 얼굴로 철문 너머,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은 평소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간혹 멀리서 보면, 눈 뜨고 죽은 햄스터 좀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보라색 햄스터가 갑자기 쳇바퀴를 향해 내달렸습니다.


갈색 햄스터는 옆을 보는 순간, 쳇바퀴 옆으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깜짝 놀란 나머지 한마디 외마디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들었습니다., 쳇바퀴 위에서 앞발을 허공에 휘젓고 있는 보라색 햄스터를 발견했습니다. 그 녀석은 평소와 달랐습니다. 조금은 이상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쳇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일부러 내는 듯, 달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라색 햄스터는 오래 머물지 않고 자기 자리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 이유는 큰 인간이 먼저 자리를 떠나고, 작은 인간이 그 뒤를 따르며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야! 왜 갑자기 밀고 지랄이야!”

화가 잔뜩 난 갈색 햄스터가 보라색 햄스터를 향해 화를 냈습니다.

“…”

보라색 햄스터는 죽은 좀비처럼 우두커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시끄럽네. 너희들 조용히 좀 하지 않을래!”

흰색 햄스터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갈색 햄스터를 향해 주저리주저리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갈색 너, 아직도 잘 모르니? 맨날 달리기만 하고 있으니, 세상 물정 잘 모르나 본데. 저 보라색은 여기를 빨리 나가고 싶어 안달 나 있어. 인간들이 올 때마다 어떻게든 시선을 끌고 싶어 하지. 약은 녀석. 갈색 너, 내가 볼 땐, 넌 쳇바퀴만 돌리다가 죽을 운명이다. 열심히 돌려라. 야! 갈색! 듣고 있냐?”

웃기고 있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남 신경 쓰지 말고, 네 뱃살이나 걱정하시지!”

갈색 햄스터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보라색 햄스터는 특별한 반응 없이, 눈동자만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응시했다. 흰색 햄스터는 밥통에 가서 작은 햄 조각을 한 입 베어 물고, 커다란 철문 앞에 앉아서 손을 모았다.


그날 저녁, 보라색 햄스터가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밥통으로 가더니, 야채와 각종 음식 부스러기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옆에 있던 물통에서 시원한 물 한 컵을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있던 자리로 다시 되돌아 갔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흰색 햄스터가 자리에 일어나더니, 밥통과 물통을 번갈아 돌아다녔습니다. 그들은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햄스터는 야행성이기 때문입니다. 갈색 햄스터도 다를 바 없습니다. 물 한 컵을 마시고 쳇바퀴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달렸습니다.


어느 화창한 날, 달리던 갈색 햄스터는 지쳤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눈꺼풀도 내려앉고 졸렸습니다. 쳇바퀴에서 내려와 엎드렸습니다. 너무 졸려 잠을 자고 싶었던 겁니다. 아주 달콤한 꿈속에서, 갈색 햄스터는 초록 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바람은 온몸에 달린 털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꽤 상쾌했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울창한 숲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그윽한 나무향이 거침없이 쉬고 있는 코를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위로는 초록 잎사귀가 하늘하늘 비행하며 내가 바라본 세상을 온통 색칠하고 있었습니다. 황홀한 기분도 잠시, 무엇인가 스르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시 조용하더니, 갑자기 엄청난 굉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흰색 햄스터와 보라색 햄스터는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둘은 커다란 문 앞에 두 손을 모은채 앉아 있었습니다. 커다란 철문이 아주 조용하게 열리고 있었습니다. 환한 빛이 그들을 향해 비추었습니다. 두 손 모은 녀석들은 빛을 향해 손을 뻗으며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철창 안에는 갈색 햄스터만 있었습니다. 어느 큰 인간 손에 작은 철창 우리가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거기에는 흰색과 보라색 햄스터가 있었습니다. 갈색 햄스터는 그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희들 언제 나갔어? 나는?”

“야! 쳇바퀴나 굴리고 있어!”

뚱뚱한 배를 움켜쥔 흰색 햄스터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나간 거야? 나만 빼고”

보라색 햄스터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무표정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븅신”



그날 밤, 갈색 햄스터는 쳇바퀴에 앉아 있었습니다. 더 이상 달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무엇이 잘 못 된 걸까?’

‘나는 달리고 싶었을 뿐인데.’

‘인간들은 왜 날 선택하지 않았지?’

‘저 철문 밖에는 여기보다 좋을까?’

‘보라색 녀석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왜 뚱뚱한 녀석을 선택한 거지?’


다음날, 갈색 햄스터는 아직도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쳇바퀴에서 올라가 달리다가, 철문 앞에 앉아 있다가,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답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정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갈색 햄스터는 목이 타서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쳇바퀴에 올랐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철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렸습니다. 이윽고 검은색 털을 가진 햄스터 두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검은색 햄스터 둘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 녀석이 쳇바퀴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갈색 햄스터는 쳇바퀴에서 내려왔습니다. 천천히 철문 방향으로 기어갔습니다. 검은색 햄스터 두 마리는 열심히 달렸습니다. 정신없이 굴리고 있었습니다. 갈색 햄스터는 철문 앞에 조심히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배를 바닥에 붙인 채 엎드렸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쳇바퀴를 바라봤다.

‘철창 밖 세상은 어떨까?’


[삽화 그림 :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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