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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Dec 29. 2019

불합격

누군가 내게 물었다. “논문 쓸 때, 제일 중요한 게 뭐지?” 

나는 바로 말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것”


조각가가 자신의 예술 작품을 만들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자신의 영감과 공감을 하나의 예술품에 그대로 녹여내고 싶을 것이다. 망치와 정으로 불필요한 조각을 과감히 쳐낸다. 빠르고 정확하게 때로는 신중하게, 온몸으로 작품을 조각할 것이다. 남은 한 조각이 남았다. 조각가는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하며 최종 작품에 흐뭇해할 것이다.


항상 무엇인가 열심히 하게 되면 보상을 바라게 된다. 나 또한 그러하다. 열심히 연구하고 논문을 썼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보상이라는 감정은 한 가지 미련을 만들어 냈다. 교수라는 자리다. 내게 주어진 기회는 두 가지 형태로 주어졌다. 대학과 임상교수다.


작년, 대학교수와 마찬가지로 올해, 임상교수 임용 채용에 보란 듯이 불합격했다. 뻔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고, 둘 다 내게 쓰디쓴 절망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인생에 미련이라는 한 조각을 과감히 쳐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공부하며 의례, 고민하게 되는 내게 주어진 교수 자리를 딱 두 번 지원과 함께 불합격했다.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왜 그럴까?


남들과 비교하면 철저히 실패한 존재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했던 연구자들은 하나 같이 잘 풀렸기 때문이다. 누가 보더라도 당연히 가야 할 길을 못 가는 공부 많이 한 사람인 셈이다. 다시 말해, 공부한 만큼 써먹지 못한 거다. 7년이라는 기간과 등록금과 투자비용 1억. 가끔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의문을 가질 때도 있다.


2년 동안 미련이 남았었다. 남과 비교할 때면 더욱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의 불합격은 나를 가볍게 만들어줬다. 마치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없어지는 조각품같이... 첫 번째 실패는 내가 원하는 교육을 마음껏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줬다. 두 번째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자기 합리화라고 말할 수 있다. 다행일지 모르지만, 절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시도는 한 셈이다. 후회 없이...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 방황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널려 있다. 누구 하나 실패를, 불합격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조각될수록, 군더더기가 없어질수록 조각가가 바라보는 작품은 완성될 것이다. 마음이 가벼워진다. 강박증 환자처럼, 내가 하고 싶은 걸 꼭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남의 시선에 고민하고 할 필요도 없다. 나의 연구 결과에 우쭐할 필요도 없다. 직업과 직위에 아둔하게 쫓아다닐 필요도 없다. 현재 하고 있는 작은 것들을 다듬고, 만들어가는 그 과정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게 정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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