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분명하다. 남은 것도 많다. 내 컴퓨터에는 녹화된 수업 영상만 즐비하다. 용량이 딸려 외장하드를 하나 구입해야 할지 잠시 고민 중이다. 올해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학생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나. 씁쓸하다. 마스크 너머 눈동자만 기억난다. 어렴풋이 사진 속 얼굴과 이름만 남겨진다. 자주 보지 못하고 수업도 제대로 못한 탓으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시험지를 넘기며 한 숨을 듣게 되는 풍경이 아니다. 모니터 저 너머로 잘 풀고 있는지 감시하는 나와 감시당하는 학생들의 모습만이 담긴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채팅으로 질문하고 답을 하게 된다. 시험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지막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심정이 참 서글프다.
내년은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올해는 잃은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다. 급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우리가 그렇다. 고성능 콘덴서 마이크와 간지 나는 카메라를 준비하고 평소 숨겨둔 고성능 노트북에 기도를 한다. 주말이면 녹화하고 또 녹화를 한다. 얼굴이 잘 나왔는지 목소리가 또렷하게 나오는지 검토한다. 최종 편집본을 업로드한다. 개인적으로 영상에 밝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지만 너희들은 어떤가. 물으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묻고 대답을 듣고는 있는지 느낌이 부족하다. 이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 죽은 감정만이 녹화된 영상 속에 남는 게 아닌지 씁쓸하다.
마스크 저 너머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감정을 읽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다. 잠시 대면으로 우리가 느낀 것이 올 한 해의 전부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침마다 희망을 갖는 건 좋겠지. 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뜨겠지.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있기에 오늘도 잠을 청하겠지.
감히 어제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감히 어제보다 오늘만이 있기를 바란다. 씁쓸한 마지막 수업이자 학생들의 모습에 아주 작은 내일을 기약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