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Dec 22. 2020

씁쓸한 종강

올해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분명하다. 남은 것도 많다. 내 컴퓨터에는 녹화된 수업 영상만 즐비하다. 용량이 딸려 외장하드를 하나 구입해야 할지 잠시 고민 중이다. 올해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학생들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있었나. 씁쓸하다. 마스크 너머 눈동자만 기억난다. 어렴풋이 사진 속 얼굴과 이름만 남겨진다. 자주 보지 못하고 수업도 제대로 못한 탓으로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시험지를 넘기며 한 숨을 듣게 되는 풍경이 아니다. 모니터 저 너머로 잘 풀고 있는지 감시하는 나와 감시당하는 학생들의 모습만이 담긴다. 서로 말을 하지 않고 채팅으로 질문하고 답을 하게 된다. 시험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마지막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심정이 참 서글프다.


내년은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인가. 올해는 잃은 것도 많지만 얻는 것도 많다. 급변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우리가 그렇다. 고성능 콘덴서 마이크와 간지 나는 카메라를 준비하고 평소 숨겨둔 고성능 노트북에 기도를 한다. 주말이면 녹화하고 또 녹화를 한다. 얼굴이 잘 나왔는지 목소리가 또렷하게 나오는지 검토한다. 최종 편집본을 업로드한다. 개인적으로 영상에 밝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렇지만 너희들은 어떤가. 물으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묻고 대답을 듣고는 있는지 느낌이 부족하다. 이 부분이 너무 안타깝다. 죽은 감정만이 녹화된 영상 속에 남는 게 아닌지 씁쓸하다.


마스크 저 너머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감정을 읽기가 참 어렵다는 점이다. 잠시 대면으로 우리가 느낀 것이 올 한 해의 전부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침마다 희망을 갖는 건 좋겠지. 내일은 또 다른 해가 뜨겠지. 어제보다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있기에 오늘도 잠을 청하겠지. 


감히 어제를 기억하고 싶지 않다. 감히 어제보다 오늘만이 있기를 바란다. 씁쓸한 마지막 수업이자 학생들의 모습에 아주 작은 내일을 기약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첫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