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Jul 11. 2021

방충망

어느 날 모기 한 마리가 새벽잠을 깼다. 불을 켜고 벽에 붙어 있던 모기를 사정없이 처단했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또다시 귀에 참 귀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다시 불을 켜고 천장에 붙어 있던 모기를 처단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옆에 자고 있던 아이를 봤다. 처참한 전투현장에서 갓 돌아온 이등병과 같았다. 얼굴이며 손, 발이며 온통 모기 총알에 난사당했다. 내 피는 맛이 없었나 보다. 이제 모기마저 나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원인은 낡은 방충망이었다. 구멍 난 방충망을 살 짝 눌러봤다. 부스럼이 생기며 먼지와 함께 더 큰 구멍이 되었다. 아뿔싸. 구멍을 더 키우고 있었다. 이미 방충망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온 집안을 죄다 확인했다. 구멍 내기 딱 좋게 삭았다.


정보가 생명이다.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하다. 참 좋은 세상. 몇 분만에 방충망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나는 고민했다. 사람을 부를까 아니면 내가 직접 할까. 그래서 하루를 더 공부해 보기로 했다. 결국 직접 해 보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방충망을 신청했다. 도구도 꼼꼼히 챙겼다.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사전에 습득한 정보를 머릿속에 꺼냈다. 바로 진행했다. 아주 쉬운 것부터 시작해 봤다. 그냥 뭐 작은 것은 어렵지 않았다. 힘든 게 딱 하나 있다면 어제 친구 만남으로 술 냄새가 풍긴다는 점이다. 아내의 잔소리에 그래도 묵묵히 먼지 가득한 망을 뜯어내고 새 것으로 갈았다. 만족했다. 처음에는 그랬다.


두 번째부터가 문제였다. 베란다에서 방충망을 꺼낼 수 없었다.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창틀과 함께 방충망 밖으로 안전 철골이 있어서 공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술냄새 풍기며 방충망과 씨름하고 있던 내 모습에 저 멀리 소파에 아내와 아이들은 눈으로 말했다.


"어제 술을 얼마나 없었으면... 제대로 하는 거 맞아?"

"아빠! 아침부터 뭐해? 내 인형에 먼지가..."

"아빠, 집에 있네..." (중학생)


그렇게 씨름을 했다. 그래도 안된다. 정보를 더 찾았다. 방충망 베란다 창틀에서 빼기와 넣기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한 번에 습득을 하지 못했다. 초반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했다. 다시 보고 또 봤다. 다행히 방금까지 엄두가 나지 않던 거대한 방충망이 내 손에 거실로 끌려왔다.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 교체하니 만족감은 배가 되었다.


괜히 전문가가 있는 게 아니다. 정보와 자신감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는 했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을 생각하니 다음에는 꼭 전문가를 불러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아내가 시원한 꿀물을 들고 아침과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먼지 끼고 낡아서 보기 흉하던데, 이건 촘촘하니  보이네.  먹고 싶어?"


별거 아닌데 우선 만족감이 훅 밀려왔다.

별거 아닌데 자존감이 훅 상승했다.

별거 아닌데 모기의 습격에 대처할 수 있다.

별거 아닌데 방충망만 보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커피 한 모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