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란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붉고 탐스러운 수박 한 조각을 을 맛있게 먹는 시간을 말한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일주일 정도를 이렇게 보내는 게 진정한 휴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
오늘은 평일이며 휴가다. 명목상 여름휴가라고 해 두자. 하루 휴가라 누구한테 말하기 부끄럽다. 계곡, 수박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휴식을 취하고 싶을 뿐이다.
집안 청소는 끝이 없다. 청소기로 집안 구석을 훑다 보면 청소할 것들이 눈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죄책감이 든다. 이곳저곳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밥 차려줄 시간이 된다.
멋진 음식을 차려야 하는 요새 아빠와는 다르게 나는 그냥 볶음밥으로 끝낸다. 그 이유는 아주 쉽기 때문이다. 풀어헤친 계란과 함께 밥을 섞어주며 간장을 넣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반찬을 잘게 잘라서 때려 넣는다. 마지막은 참기름으로 끝낸다. 누가 보기에는 있는 거 그냥 다 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맛이 좋다는 품평으로 자주 애용하는 레시피다.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있으면 그만이다.
잠시 독서를 하려고 했지만 집안은 이미 한 여름이다. 에어컨을 켜보려고 했지만 눈에 보이는 먼지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또 청소를 했다. 사실 나이가 먹을수록 이상하리만큼 청소하는 습관이 생겼다. 휴일에 청소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우선 청소하고 정리 정돈한 것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 보람된 하루를 보낼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가 퇴근 후 집에 왔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청소와 정리정돈을 다 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집에 있으면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여린 내 가슴에 일침을 꽂았다. 아내는 말고 행동이 좀 상반된 이중인격자 같기도 하다. 그런 험한 말과는 다르게 주방에서 맛있는 저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여름휴가는 주말을 껴서 3일이다. 하루를 집안 청소로 올인하니 이틀은 오로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할지는 머릿속에 있지만 가급적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 휴일을 즐길 생각은 없지만 머릿속을 하얀 백지처럼 만들고 싶어서다. 그래야 월요일부터 잘 채워지기 때문이다. 여름휴가가 하루면 어떠랴. 집에 있으면 어때, 밖에 나가면 더운데. 시원한 계곡은 없지만 시원한 수박을 한 통 사 와서 가족들과 먹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