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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l 31. 2021

여름휴가

여름휴가란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붉고 탐스러운 수박 한 조각을 을 맛있게 먹는 시간을 말한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일주일 정도를 이렇게 보내는 게 진정한 휴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네.


오늘은 평일이며 휴가다. 명목상 여름휴가라고 해 두자. 하루 휴가라 누구한테 말하기 부끄럽다. 계곡, 수박은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휴식을 취하고 싶을 뿐이다.


집안 청소는 끝이 없다. 청소기로 집안 구석을 훑다 보면 청소할 것들이 눈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죄책감이 든다. 이곳저곳을 누비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 밥 차려줄 시간이 된다.


멋진 음식을 차려야 하는 요새 아빠와는 다르게 나는 그냥 볶음밥으로 끝낸다. 그 이유는 아주 쉽기 때문이다. 풀어헤친 계란과 함께 밥을 섞어주며 간장을 넣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잘 먹지 않는 반찬을 잘게 잘라서 때려 넣는다. 마지막은 참기름으로 끝낸다. 누가 보기에는 있는 거 그냥 다 섞는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이들이 맛이 좋다는 품평으로 자주 애용하는 레시피다.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있으면 그만이다.


잠시 독서를 하려고 했지만 집안은 이미 한 여름이다. 에어컨을 켜보려고 했지만 눈에 보이는 먼지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 또 청소를 했다. 사실 나이가 먹을수록 이상하리만큼 청소하는 습관이 생겼다. 휴일에 청소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우선 청소하고 정리 정돈한 것만으로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 보람된 하루를 보낼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다.


아내가 퇴근 후 집에 왔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청소와 정리정돈을 다 했다고 말했다. 아내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집에 있으면 그거라도 해야 한다고 여린 내 가슴에 일침을 꽂았다. 아내는 말고 행동이 좀 상반된 이중인격자 같기도 하다. 그런 험한 말과는 다르게 주방에서 맛있는 저녁을 하고 있었다.


나의 여름휴가는 주말을 껴서 3일이다. 하루를 집안 청소로 올인하니 이틀은 오로지  시간을 가질  있을  같다. 무엇을 할지는 머릿속에 있지만 가급적 아무것도  하려고 한다. 휴일을 즐길 생각은 없지만 머릿속을 하얀 백지처럼 만들고 싶어서다. 그래야 월요일부터  채워지기 때문이다. 여름휴가가 하루면 어떠랴. 집에 있으면 어때, 밖에 나가면 더운데. 시원한 계곡은 없지만 시원한 수박을    서 가족들과 먹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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