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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May 26. 2019

짧은 대화

지금에 충실하자.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 오붓한 저녁이 최고다.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주말은 참 소중하고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 고마운 선물이다. 즐거운 표정으로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를 도와 숟가락이며 젓가락을 밥상이 얹어 놓는다. 밥도 준비하고 반찬도 챙긴다.


작은 주방 작은 공간에 1미터 남직 옆에 있던 아내는 작게 속삭인다.

“내가 없으면 밥도 못 차려먹고 굶어 죽겠지?”

뜬금없는 아내의 말에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 물컵을 밥상에 올려놓으 이렇게 말했다.

재혼해야지. 뭐.


순간 등 뒤에 느껴지는 싸늘한 시선과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어디론가 모를 공간으로 자취를 감추 공포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

“야~ 너! 재혼? 어이가 없네”

“밥은 혼자서도 차려 먹을 수 있거든. 당신이 없으면 뭐. 재혼해야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잖아!”


아내는 화가 났다는 표정보다는 어처구니없어하는 황당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늙어서 찬밥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먼.”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하면서 계속 이어갔다.

“정상이 아니야. 내가 정말 속아서 결혼했지. 역시, 남의 말을 좀 들었어야 하는데. 가끔 보면 똘아이 같아. 누구 만나는 사람 있는 거 아냐? 바로 말해. 쿨하게 보내줄 테니. 단지 내가 사준 거 다 내놓고 가요. 옷도 다 벗고 속옷만 입고 나가요.”


작은 공간에 우리는 짧은 대화를 나누며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을 보냈다. 우리 모두 함께. 정말 오붓한 가족. 아무 일도 없었다. 재혼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기억날 뿐이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언제나 그렇듯 일찍 일어나 집 청소부터 한다. 습관이 들어서 집안 정리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아침 먹기 전 운동삼아 하게 된다. 기분이 꿀맛 같다. 조심스레 정리를 하고 있는데 뒤이어 일어난 아내는 벌떡 나를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재혼이라고 했지. 오빠~”


이쁘고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4살짜리 딸은 이불속에서 뒹굴고 있다. 나의 눈이 마주친 딸은 밝게 아주 행복한 눈빛이다. 아내는 딸에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이쁜 딸.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

아직 잠에서 덜 깬 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또랑또랑하게 말한다.

“엄마”

아내는 또다시 융단 폭격을 가했다.

“돈도 없고 힘도 없으면서 이빨 빠지면 가차 없이 버릴 거야. 그런 줄 알아요. 정말 찬밥 먹고 싶은 거네. 지금 내가 속아서 결혼하고 아직도 속고 있는데. 내가 정말. 당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네. 더 늙기 전에 정신 차려요.”


그래도 우리 아내는 천성이 여자인가 보다. 속사포처럼 쨉을 날리더니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침상을 준비하고 있다. 정성스럽고 맛난 음식과 함께 밥상에서 아이들보다 먼저 나를 챙겨준다. 내 숟가락에는 이내 아내가 준 반찬으로 산을 이룬다. 10년 넘게 아직도 속고 있는 그녀. 잠시 고민해 본다. <재혼>


혼자 사는 게 좋을까?
아니야. 재혼이 답이야?
지금은 잘 모르겠어.
모르겠다.
그냥 지금 즐겁게 지내야겠다.
찬밥 얻어먹지 않으려면...


-집안 청소를 마치고 소파에서 양평으로 놀러간 아들을 그리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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