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May 26. 2019

딸 바보

작은 숙녀 큰 행복

4년 전 둘째가 태어났다. 그날이 기억난다. 진통을 느끼는 아내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지쳐 있는 그녀는 내게 말했다.

“우리 딸, 문제없어야 할 텐데. 후~ 후~”

고통이 전해진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단지 손 잡아주고, 무통주사가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시간을 응시할 뿐이다. 땀에 젖은 아내에게 훅 던진 말 한마디가 아내를 웃게 했다.

아들이면 좋겠다. 형제가 딱 좋은데


웃음 반 실소 반으로 어이없어 째려보는 아내는 고통을 느끼며 말한다.

“지금에 와서 그게 할 소리야? 아들이면 좋겠다고? 오빠 도움이 안 되거든! 불쌍한 우리 딸. 네 아빠가 너 고추 달고 나오란다. 듣고 있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나는 고추 달린 아들이 나오면 참 좋을 것 같은 상상을 했다. 그 후 몇 시간이 지나고, 내 품에는 갓 태어난 아이, 세상에 나와 처음 호흡을 하고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울부짖는 핏덩이가 있었다.


한가한 일요일 아침, 아들은 지난밤 지인의 집에 놀려갔다. 아들은 없다. 우리 세 식구는 가까운 마트로 산책을 나갔다. 4살짜리 귀여운 꼬마 숙녀는 말을 잘한다.  여자 아이들은 역시 빠르다. 지난 4살짜리 아들은 절대 말을 못 했다. 분명 기억난다. 작은 숙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윙크하며 말한다.

아빠 손, 엄마 손


여름이 훌쩍 다가온 듯하다. 덥다. 우리 셋은 시원한 마트를 누비고 또 누볐다. 아내와 딸은 신나게 웃으며 무엇인가 들고 뛰어온다. 공주 아이템인 왕관, 귀걸이, 목걸이, 반지다. 분홍색 하트 모양이다. 


공주로 변신한 딸의 표정을 봤다. 세상 다 가진 행복한 얼굴이다. 지나가는 상점의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귀걸이를 흔들고 작은 손에 끼워진 반지도 쓰다듬는다. 정말 행복한 작은 숙녀를 보았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 나는 공주. 이쁘지?”

순간 딸의 말과 웃음에 훅 넘어가며 나 또한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다. ‘이래서 딸 바보가 되는 건가?’ 이 기회에 딸에게 물어봤다.

“아빠랑 살래? 엄마랑 살래?” 

딸은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답했다.

“엄마랑 살래. 엄마가 사줬으니까.”

'흥!' 나는 이럴 줄 알고 삐친 척했다. 이내 분홍색 왕관과 목걸이를 살피는 딸은 눈치를 보며 말한다.

아빠 사랑해. 이리 와. 안아줄게. 슬퍼하지 마.


공주를 꿈꾸며 한없이 행복해하는 딸을 보니 4년 전 내 품에 안긴 핏덩이가 기억난다. '아들이면 큰 일 났겠군.'


아내 말에 토 달지 말고 바르게 살아야겠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살지는 않지만 가끔 망각하고 지내는 것 같다. 작은 것에 무심코 넘어가지 말자. 작은 숙녀의 말 한마디가 힘이 되고 행복하다. 또한 딸의 모습을 보며 작은 행복을 느낀다.


-딸과 살고 싶어 공주 아이템을 검색하며


작가의 이전글 짧은 대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