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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16. 2019

구름 하늘

나른하다

일요일 오전 10시쯤이다. 나와 딸은 나갈 수밖에 없었다. 딸에게는 엄마 나에게는 아내라고 불리는 <달링>께서 지난 야간근무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반 강제적 명령이 떨어진 상태다. 딸은 좋아한다. 나는 반대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달링>이 우리로 인하여 잠을 못 자면 안 된다. 집안에서보다 밖에서 힘듦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나는 부랴부랴 선글라스, 물, 핸드폰 등을 작은 가에 넣고 집을 나섰다.



시력 0.3이 고려된 진한 브라운색을 띤 선글라스는 강하지만 따스한 햇살을 잘 차단해 주고 있다. 이 녀석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았다. 놀이터 광장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아마도 예배나 미사를 하는 시간이기에 부모님을 따라 교회나 성당에 갔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슬슬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있다. 나는 놀이터 옆 광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저 멀리 하얀색과 회색으로 솜사탕들이 파란색 바다에 뿌려진 것처럼 그려진 <구름 하늘>을 보았다.



작은 존재인 인간. 아파트라는 인위적인 건물들 사이에 펼쳐진 저 광활한 바다와 햇살에 비치는 하얀색 물감이 진하게 때로는 옅게 뿌려지는 그것은 파란 하늘 아래 구름이다. 일요일이라는 정적이며 행복한 요일과 오전이 상쾌함을 배경으로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구름 하늘을 바라보니 참 좋았다. 찌그러진 모양에 브라운색을 띤 내 세계에서 펼쳐진 광경은 놀랍도록 평화로움으로 다가왔다. 이 느낌은 흡사 주말이면 어김없이 찾아다니던 캠핑장에서 느끼는 나른한 주말과 같았다. 넓고 넓은 우주만큼이나 깊고 깊은 심해와 같은 구름 하늘은 이렇게 놀이터에서 내 선글라스를 통해 다가왔다. 집에 나오길 잘했네.



구름 사이를 뚫고 흙 날리는 한 줄기 빛은 푸른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흰 구름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킥보드에 몸을 싣고 열심히 놀이를 즐기는 아이는 미끄럼 놀이를 하고 있다. 나는 더욱 조용한 곳을 찾았다. 광장에서 제일 조용한 곳. 작은 벤치에 누웠다. 눈 앞에 펼쳐진 <구름 하늘>은 내게 주문을 외우고 있다. 나른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구름만 바라보니 나라는 존재는 저 넓은 하늘에 비해 너무도 작은 생명체라는 사실만 깨닫게 되었다. 하늘 아래 작은 인간.




저 멀리 작은 인간 아이가 내게 다가와서는 <구름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빠. 저거 사줘. 솜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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