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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19. 2019

15주차 오늘

하고 싶은걸 찾아, 그리고 그냥 해봐

15주

나는 땅과 하늘을 본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한다. 나는 걷고 있다. 비에 촉촉이 젖은 아스팔트와 흐리지만 아주 옅은 푸른색을 띤 하늘이 눈에 띄었다. 나의 두 손에 들려진 것들이 보인다. 한 손에는 유명한 일본 작가의 장편소설책 한 권과 또 다른 한 손에는 평소보다 가벼워 보이는 가방이 들려져 있다. 1주일 만에 밟아보는 대학 교정을 걷고 있다. 물뿌리개로 살포시 뿌려진 빗물은 내가 걸을 때마다 신발 바닥에 붙어 촉촉한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어내는 소리를 내고 있다. 내 귀와 나의 기분은 시원하다. 앞만 보다 옆을 쳐다본다. 발 빠른 학생들이 내 어깨선을 통과한다. 그들의 한 손에는 A4 사이즈로 프린트된 용지가 들려져 있고 어느 손에는 옆 친구 손을 마주 잡고 못다 한 시험공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흔한 오전 대학 교정에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다.

14주

비에 촉촉이 젖은 이 길, 지난주에 마주친 이 길은 오늘과 달랐다.  그날이 기억난다. 아침부터 뜨거운 태양에 아스팔트는 달궈지고 있었다. 대학 교정을 지나 걷고 있다. 숨을 쉴 때마다 건조한 공기와 함께 나의 코가 힘들어하는 걸 느낀다. 최근에 새로 산 선글라스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무덥고 건조하다. 나는 저 멀리 강의실까지 걷고 싶지 않았다. 앞만 보다 옆을 쳐다본다. 내 어깨선을 통과하는 어느 학생의 걸음걸이도 나와 같았다. 지친 아침이다. 이날은 분명 누구나 비를 느끼고 싶어 할 것이다. 그곳으로 걷고 있다. 태양의 빛은 나의 온몸을, 내 모든 세상을 통과하고 그림자라고 부르는 나의 일부를 그림 그리듯 기록하고 있다. 나만이 알 수 있는 모습 그대로다. 이것도 나의 일부다. 저기 저 멀리 태양은 나의 그림자를 창조하고 있었다.


태양과 조우한 그날은 실제로 마지막 수업이었다. 종강이라고 부르기는 뭐하다. 그냥 종강 전야제라고 부르자. 전야제는 여느 대학이나 마찬가지로 강의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기말고사 시험 전이라 학생들은 그간 14주 동안 몸에서 진화해온 촉수를 아주 길고 가늘게 뽑아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교실 천장을 뚫을 것 같기도 했다. 전야제는 집중 그 자체다. 내 말 한마디는 성경의 한 구절처럼 그들에게 전해졌다. 학생들은 평소와 다르게 메모에 집중했다. 시험문제라고 말하며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내 표정과 장단에 학생들은 흥겨워했다. 아~하, 으~음, 오~, 여러 가지 발성연습을 하며 탄성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흥분하고 설레고 두려워하며 종강을 기대하고 있었다.


생판 모르는 얼굴들의 남녀 성인들, 대학생이라고 부르는 평균 나이 23세 젊은 인간은 그렇게 나와 함께 3월을 시작했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처음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목사처럼 차분하게 설교를 했던 그날을 뒤로하고 이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끝은 항상 자연스럽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 같다. 시작과 끝 사이, 그들과 나 그리고 우리는 15주라는 조각난 기억들을 정리하고 인용하며 단편소설을 창조하고 있었다. 단행권이 된 우리들의 소설은 나를 포함하여 총 60개의 조각난 이야깃거리로 엮어서 만들어졌다. 직사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얼굴을 맞대고 종이의 질감과 빔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뜨거운 팬의 열기를 느꼈을 것이다. 색감도 모양도 냄새도 모두 다른 총 60개의 단편 조각들은 어느새 각자의 머릿속에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시간을 함께 했다.


학생들의 뇌는 풀가동 중이다. 여기저기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웬만한 도서관에서 뿜어내는 것보다 강도가 높다. 그 이유는 짧은 시간에 방금 훑어본 내용과 어렴풋이 희미한 기억과 정보를 0.1 mm 두께의 무색 종이에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난밤이 궁금했다. 누구는 밤샘을 하며 칼을 갈았을지도 모른다. 이와 반대로 아예 포기하고 동물적 직감으로 문제를 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은 모두 똑같다. 시험을 잘 보고 점수를 잘 받는 것이다. 물론 이 시간은 분명 15주를 마무리하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시간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숫자로 나타내는 정량적 평가가 필요하다. 최종 평가. 그러기 때문에 학생들의 뇌는 풀가동일 수밖에 없다. 이 작은 공간에서 그들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긴장감과 애타는 마음이라는 에너지.


어느 순간 절박하고 애타는 긴장감은 눈 녹듯이 없어진다. 그렇게 이 시간을 끝으로, 우리가 처음 시작한 3월, 조금은 차가운 봄에서 더위가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6월의 어느 비가 촉촉하게 내린 날까지. 우리는 그렇게 마무리한다. 지난 과거를 되묻고 싶지 않다. 다만 오늘을 끝으로 다시금 새로운  15주가 찾아오기까지 우리에겐 꽤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다. 아마 8주 정도 될 것이다. 이 시간은 무엇인가? 가령 누구에게는 짧고 의미 없이 시간이 될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길고 가치 있는 보석이 될지 모른다. 무엇이든 8주라는 기회가 주어지고, 모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아무리 내가 말해도, 부모님 또는 친구가 이야기해도, 당사자가 인지하고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뿐인가, 생각과 계획을 행동으로 옮겨야지 진정한 의미가 생길 수 있다.



종강 전야제, 그날 내 입에서 나온 메시지는 총 59편의 조각난 단편소설 어느 구석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건 순전히 나의 예상이다. 각자가 무엇을 선택하든 모두 다르다. 그러나 내 메시지는 분명하다. 


하고 싶은걸 찾아, 그리고 그냥 해봐


 구구절절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옛 과거 사례를 언급한 바 있다. 대학시절 산악 동아리, 영화 만들기, 연애하기, 아르바이트, 산악부대, 컴퓨터, 독서와 글쓰기 등 단편적인 기억들의 조각을 빌려 말했다. 그들도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귀에는 길모퉁이에서 어느 이상한 아재의 잔소리로 들었을 테다. 또 어느 눈에는 똑같은 이야기만 늘어놓는 목사의 설교처럼 보였을 테다. 또 어느 머리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느꼈을 것이다. 후두엽 어느 한 구석에 박혀있을 정밀하고 정확한 타이머를 갖춘 시한폭탄.


나는 너희들보다 아는 게 많이 없다. 다만 아는 것은 내 인생의 경험과 지금 너희들에게 알려주고 자 하는 치료학이라는 전공의 책 한 부분일 뿐이다. 15주의 마무리를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를 평가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시험을 대신하여 오늘을 마무리한다. 지나가는 어느 볼품없는 아재라고 생각하고 듣기를 바란다. 


종강 전야제, 내가 언급한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깊이 있는 자기 성찰을 했으면 한다. 


나도 너희들보다 아는 게 많지 않다. 다만 이 말을 할 자격은 조금은 있다고 자만한다. 다음 15주에 또 얼굴을 볼 때, 분명 너희들의 선택만큼, 딱 그만큼 변화되었을 테다. 좋든 싫든 변화는 분명히 있다. 변화가 없는 인간은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다. 변화는 과거와 현재를 잊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그 선택은 순전히 본인의 몫이다. 무엇이 좋든 안 좋든 정답은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고 정답을 끄집어내길 바란다.


끝으로, 우리에게 최상위 포식자는 <시간>이라는 괴물이다. 이 녀석과 맞서 싸울지 아니면 도망갈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그렇다고 너무 심란해하지 마라. 시간이라는 괴물 앞에서는 누구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시간>이라는 괴물과 싸우려고 아침마다 계획하고 또 실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여러분도 <시간>이라는 괴물에 맞서 싸우는 워리어가 되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비에 촉촉이 젖은 아스팔트에서 조언 하나를 건졌습니다. 광활한 대지와 저 멀리 태양이 햇살이 내게 알려준 메시지입니다.


<천천히>


조급해하지 마시고, 천천히 아주 느긋한 고수를 꿈꾸시길 바랍니다.

모두들 수고 많았습니다.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15주차 오늘까지 수고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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