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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23. 2019

흠집(흠)

실패는 실패다.

흠이 생겼다. 또 하나의 상처가 내 몸에 새겨진다. 실패했다. 통과하지 못했다. 우리는 영어로 <Fail>이라 부른다. 학생들과 함께 어느 기관에 신청서를 냈다. 연구 과제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를 했다. 연구할 주제를 정하고 그 내용을 몇 장 분량의 종이에 우리의 생각과 계획을 채워 넣었다. 이런 신청은 나도 처음이고 학생들도 처음이다.


떨어졌다(drop). 우리의 신청서는 저 멀리 높은 곳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어느 누군가 신나게 흥겨워하는 그것을 내동댕이쳤다. 그것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우리의 마음까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내 발아래에는 커다랗고 시커먼 풍경으로 깊이는 아주 깊은 큰 흠집 하나가 생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너무도 평온하고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다. 내게 이런 광경은 꽤 익숙하다. 너무나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나는 절벽을 바라다본다.



바닥을 보며 길을 걷다 보니 신호등이 보인다. 최초 아무런 흠도 없이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하얀 선들은 하나둘씩 상처가 생겼다. 벗겨지고 찢기고 탈락되고 변색되었다. 새롭게 정비를 하지 않는 이상 그 모습은 차츰 더 흉측해질 것이다.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나는 이 흉측한 선들을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 마음의 상처를 밟고 나아간다. 오늘의 실패를 밟고 또 나아간다. 수많은 흠집과 상처 그리고 실패는 나에겐 너무 익숙하다. 방금 건너온 신호등을 돌아보며 생각한다.


학생들 심정은 어떨까?

나의 기대는? 작았다. 다만 1%라는 아주 작은 기대뿐. 하지만 학생들 기대는?

그들의 나이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서 느껴본다. 그리고 옛 경험 하나를 끄집어낸다.




<불합격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두툼한 컴퓨터 모니터에 아주 큼지막한 글씨가 보인다. 내 눈동자는 앞글자에 멈춰 서고 내 가슴은 시커멓게 타다 남은 재로 변했다. 시끌벅적한 게임방.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이지 모를 남자아이들이 즐비하다. 시끄럽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는 다시 메시지를 확인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앉은 의자가 오늘따라 싫어진다. 내 몸을 잡아당기고 있다. 일어나야 해. 그러나 나는 시장통 같은 이 곳을 벗어날 기운이 없다. 시계를 본다. 아르바이트할 시간이 다가온다. 한 숨을 쉬고 또 모니터를 쳐다본다. 역시, 메시지는 그대로다.


<불합격>


이번이 아마 5번째다. 그러고 보니 1년이 넘었다. <인터넷 검색사> 자격시험에 도전하는 것도 이제 지겨워진다. 그렇다. 지난 시간 동안 나만의 시험장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오늘도 쓰디쓴 고베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사실, 시험을 보지 않아도 그만이다. 혹시나 합격을 해도 내 삶에 큰 변화는 없다.


나는 왜 도전하는가?


첫 자격시험에서 <불합격>을 맛보고, 나는 오기가 발동한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될 것도 아닌걸 열심히 도전한 것이다. 시험은 쉽지 않았다. 여러 비슷한 자격시험이 많았지만 유독 이 녀석은 이론과 실습을 모두 겸비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정말 어려웠다. 시험도 시험이지만 신청비용도 비쌌다. 거의 학생들이 이 시험을 볼 텐데, 왜 이리 비싼지, 아직도 의문이다. 나는 그렇게 이상한 냄새에 코를 찌르며 눈에 따가울 정도로 지저분한 그 게임장에서 모니터만 빤히 쳐다봤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다. 나에겐 엄청난 <불합격>들이 상처로 혹은 흠집(흠)으로 남겨졌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다. 작은 흠집은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그렇다 치고 학생들은...... 함께한 학생들은 분명 크고 굵은 절벽을 보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뻔하다. 당연 나보다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들은 나보다 젊다. 그리고 나처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18년 전 나처럼 잔뜩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절벽은 내 것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엄청난 절벽 아래서 부푼 기대만큼이나 터져버린 아쉬움.


이런 일들은 삶에 있어, 계속 그리고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 맛본 실패는 우리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행이다. 신청을 하지 않았으면 이런 느낌을 받을 일도 없다. 우리의 선택에 상처 받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실패할 경우도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작은 면역주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반대로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 즉, 무방비상태에서 우리가 선택하지도 않는 그 무엇으로부터 상처와 실패를 경험한다면 엄청 힘들어질 것이다. 우리는 깊고 시커먼 절벽에 떨어질 것이다. 자책감, 자괴심, 우울감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남기고 그렇게 떨어졌을 것이다.




작은 흠집에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신청서는 그냥 바닥에 드롭(떨어지다)된 것이다. 아쉽지만 그렇다. 그냥 작은 흠집이 가슴에 기록되었을 뿐이다. 18년이란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내가 겪은 수많은 크고 작은 흠집이 내게 많은 걸 알려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안에 숨겨진 선생님. 서로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한다는 원리가 다른 어느 선생님과 다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좋은 명언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이 말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간혹 이렇게 수정한다. 그리고 그냥 웃어넘긴다.


<실패는 실패다. 인정하자.>


오기가 생길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도 되겠지만, 아직 인정하지 못한다면 이겨 넘겨야 한다. 그래야 이겨야 성이 찬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각자 다른 크기의 풍선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비슷한 기회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때까지 오기라는 감정을 버리지 말았으면 한다. 이 감정이야 말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라는 곳으로 이끌 유일한 키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하여 실패하고 오기로 이겨내고 그 과정을 맛보길 희망한다.


나는 18년 전 게임방 풍경을 기억한다. 6번째 그 모니터에는 이런 메시지가 있었다.


<합격입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실패는 근육이다. 할수록 단련이 된다.

내 근육은 살아있다.

터질 듯이 힘들어도 단련해야 한다.

하고 싶지 않아도 앞으로 나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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