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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27. 2019

다리(bridge)

<너의 다리는 안전하니?>

친구가 말했다. “실력+간절함+운빨. 이 삼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것 같아.” 친구의 목표는 대학교수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독감은 아니다. 이미 항체가 있어서 다행이다. 친구는 경험치 1점을 획득했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는 나는 어부지리로 1점 챙겼다. 그가 말한 실력, 간절한, 운빨을 생각해본다. 나에겐 딴 세상 일. 시간은 생각을 변화시킨다. 친구가 말한 삼박자도 변한다. 목표는 자꾸만 멀어져 간다. 보이지 않는 텔레파시는 나를 흔들게 한다. 감지하지 못할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딴 세상.


박사학위를 준비한 자. 힘든 박사를 마치고 그걸로 끝났다. 더 나아가야 할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하지만 내 마음 구석에 남은 <IF> 문 알고리즘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나는 프로그램을 종료시켰다.


박사학위를 받은 자. 뒤로 갈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전진해야 만 했다. 목표는 대학교수다. 도전하는 자가 아름답다고 했다. 도전을 해야 할 운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프로그램을 종료시켰다.


박사학위를 받은 친구. 서로의 삶과 목표는 다르다. 그의 목표는 변한다. 그러나 이미 대학교수다. 차츰 우리는 느낀다. 도전하는 자의 실패가 현실이 되어가는. 새로운 하루는 또 새로운 경쟁자를 낳는다.


친구와 나는 하나다. 교수로 가는 길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 다른 점은 하나 있다. 나는 프로그램을 종료했지만, 친구는 아직 종료하지 않았다. <For> 문을 사용하며 반복 실행을 진행하고 있다. 또다시 실패라는 경험치를 획득할 것 같다. 아직 미정이다. 그러나 실패라는 단어는 사실이다. 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예상할 수 있다. 벼락이 치고 하늘이 반으로 쩍 갈라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 직장으로 출근한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 커다란 다리가 하나가 있다. 내가 사용하기에 딱 맞다. 너비는 1미터 폭으로 고정되어 있고, 길이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 일이 많고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에는 다리는 길어진다. 칼퇴근하는 날이면 다리는 짧아진다. 색상도 자유자재로 바뀐다. 시원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 다리는 청명한 하늘색으로 변한다. 늦은 저녁에 머리가 복잡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면 어느새 어두 컴컴한 검은색으로 묵직하게 변한다.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은 직장과 가정 사이에 놓인 나만의 다리와 같다. 행복이라는 큰 목표가 존재한다. 작은 실천은 삶의 만족이라 생각한다.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직장도 가정도 내게 재미있고 즐거운 공간이 되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무거워지고 비틀어지면 나만의 다리는 휘청거리게 될 것이다. 나는 다리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다. 저 멀리 직장이라는 곳은 큰 빌딩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가정이라는 곳은 아파트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멀게만 느껴진다.


삶은 매일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지금이 바로 현실이다. 지금에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이 다리는 언젠가 붕괴되고 말 것이다. 다시 기둥을 세우고 연결하려면 하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만의 다리가 비틀어지고 휘청거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누가 와서 줄을 끊어 버리고 망치로 내려치지도 않는다. 오직 나만이 이 다리를 관리할 수 있다. 매일 앞 뒤로 걷고 생각하는 이 다리가 <만족>이라는 조각과 같지 않을까. 작은 실천이 내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친구에게,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너의 다리는 안전하니?>

대학교수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시간과 돈 그리고 기회비용이라는 3 가지 축에서 이익과 손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쉬움만 생각한다면 나는 경영자로서 이미 파산의 길로 걸어가는 중이다. 풍부한 삶의 작은 조각이라 생각하면 나는 철학자로서 이미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환자가 되어야 한다. 무엇이든 현재, 나는 선택할 수가 없다.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면 극복해야 되지 않을까. 그러기에는 또다시 시간, 돈, 기회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실패한 경영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혹독한 시련이 뒤따른다. 그러나 아쉽다. 현실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가정과 직장 사이에 나만의 다리가 어떤지 점검할 때다. 더 튼튼하게 할 것인지. 새로운 다리로 리모델링할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다리를 만들어 연결할 것인지. <선택>은 항상 스트레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선택>할 수 없을 때가 많아서 문제다. 친구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현재, <너의 다리는 안전하니?>라는 질문을 곱씹어 볼 시간일 뿐이다.




나는 친구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낸다. 나에게도 보낸다.

“현실 만족, 그게 참 어려워. 일과 가정, 이 두 공간을 연결하는 다리가 허술한가 아니면 반짝이는가. 결국 정답은 본인이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야.”


<사진출처: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 https://www.yna.co.kr/view/AKR20160901164100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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