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Jun 28. 2019

A에서 F까지

모두가 달콤한 사과

“교수님. 이번에 점수가 낮으면 큰일 납니다. 학사경고는 물론 장학금도 끊깁니다. 성적 조금만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저는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충격받았습니다. C에서 B로 올려주시면 안 될까요? 이렇게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교수님. 성적 확인했습니다. 제 나름대로 확인한 거란 너무 달라서. 중간고사 기말고사 성적과 석차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제 성적이 잘 못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죄송합니다.”


세 가지 유형 질문의 공통점은 딱 2 가지다. 

<교수님> 소환과 <죄송합니다> 부탁

질문 하나에 나는 미안함 수백 개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모두들 열심히 내 수업에 충실히 임했기 때문이다. 어느 학생 하나 수업을 대충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잘 보인다. 이런 사실이 나를 힘들게 한다.


모두들 첫 수업시간을 시작으로 열심히 15주를 달렸다. 아는 것도 생기고, 기억에 남는 것도 생기고, 정반대인 것도 생기고. 모두들 수업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했다. 모두가 내 수업 시간에 그렇게 했다. 인정한다. 


수업내용, 이해가 짧은 학생도 분명 존재한다. 반대로 하나를 던져주면 10개를 받아먹는 학생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 정도의 차이를 구분하고 싶지 않다. 모두 비슷비슷하기 때문이다. 구분 짖는 게 너무 싫다.


수업을 듣고, 우리는 중간과 기말고사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가지 시험을 통해 평가받는다. 평가는 우선 출석과 시험이 우선이다. 총 100%에서 80%을 기준으로 1등부터 꼴등까지 순위를 메긴다. 나머지 20%는 부가적인 점수다. 이후, A, B, C, D, F라는 학점으로 구분한다. 종이 한 장 차이는 이렇게 5구역으로 구분된다.


내 가슴과 마음은 모든 학생들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미 모두가 <A+>다. 출석이 저조한 학생도 분명 존재한다. 그래도 수업에 집중하고 함께 즐겼다.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평가는 해야만 한다. 


<겨우 얇은 종이 한 장 차이>



<출처: 한국 사과연합회 홈페이지 http://www.fruit.or.kr/apple/home/index.jsp>


내 앞에 커다랗고 둥근 책상 위에 사과상자 5개가 있다. 상자의 크기는 다양하다. 상자의 크기는 너무 견고하고 무거워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 자리 그대로 놓여 있다. 미리 준비한 사과도 있다. 나는 오늘 중으로 사과를 상자에 담아야 한다. 먼저, A라는 사과를 준비한다. 하나 둘 정성스럽게 담는다. 몇 개의 사과를 담았다. 상자에 빈틈이 보인다. 아주 작은 틈새에 나는 어떻게 해서든 A라는 사과를 담아 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쉽지가 않다. 상자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A사과가 채워진 상자보다 두 배 정도 커 보이는 상자에 B라는 사과를 하나 들어 정성스럽게 담는다. 하나, 둘, 셋...... 정확하고 빈틈없이 채워 넣는다. B사과는 참 많다. 그래도 상자에 여유가 있다. B라는 사과는 어느 정도 채워졌다.


책상에 남은 3개의 빈 상자를 본다. 상자의 크기는 가늠할 수 없다. 작은지 큰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내 앞에 남은 사과가 있다. 뚫어지게 쳐다본다. 좀처럼 이쁘고 달콤해 보이는 그저 평범한 사과다. 하지만 냄새만 맡아서 군침이 절로 나온다. 꽤 상태는 양호하다. 저 구석에 놓인 다른 사과가 있다. 


이상한 사과 하나. 이 녀석은 색이 자꾸 변한다. 처음에는 붉은 색인 줄 알았다. 다시 보니 보라색 같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수많은 정보를 계산하고 종합하여 이 사과는 독사과일 것이라 판단했다. 혹시 몰라, 인공지능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 예상한 대로다. 인공지능은 독사과일 확률이 99.9%라고 말한다. 나는 독사과에 이름을 붙여줬다.

F

F라는 사과는 이상하게 생긴 사과상자에 들어갔다. 똑같은 방식으로 독사과 몇 개를 추려서 상자에 넣었다. 마음이 짠하다. 서글퍼진다. 독사과는 폐기처분 대상이 될 것이다.


아참!!! 잊고 있던 사과들이 눈에 보인다. 

C, D라는 사과를 잘 정리해서 남은 상자에 넣는다. 모두가 잘 정돈되었다. 독사과를 제외하고 상자에 담긴 모든 사과는 나의 코를 자극한다. A와 B사과에서는 빛이 난다. 너무 눈이 부셔서 상자 뚜껑을 닿아 버렸다. 

<A와 B사과상자> 완벽하게 채워진 2개의 상자에는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았다. 


잠시 생각해 본다. 아니 궁금해졌다. 보라색 독사과는 잘 있나? 이상하게 생긴 상자 안을 들여다본다. 독사과는 보라색에서 녹색 그리고 노란색에서 붉은색으로 자꾸 변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캠핑용 취침등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왠지 모르게 불쌍해 보이는 독사과 두 개. 나는 허전한 마음을 뒤로하고 뚜껑을 닫았다. 


잠시 후, 독사과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제발. 저를 폐기하지 말아 주세요. 인공지능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저를 보세요." 나는 이미 뚜껑에 덮인 F라는 사과상자를 보고 있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생각을 멈춘다. 울고 있는 F라는 사과를 꺼내 한 입 베어 먹어봤다. 음... 이상이 없다. 맛도 생각보다 맛나다. 나는 F라는 사과상자를 저 멀리 구석에 처박아두었다.


물끄러미 4개의 사과상자를 바라보고 있다. 모두 다 비슷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 색상도 마찬가지다. 먹음직스러운 붉은색. 신선한 껍질. 하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다. 검은 반점을 가진 녀석도 보인다. 어느 한 구석이 움푹 파인 녀석도 보인다. 색상이 조금 연녹색을 띤 녀석도 보인다. 빛을 내는 녀석도 있다. 신기하다. 조금은 달라도 그 맛이 어디 가겠는가. 모두 다 먹음직스러운 특유의 과일향을 내뿜는 신선하고 유일한 사과다.




"모두가 A학점이라고 생각해. 다만, 내가 정하지 못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게 상대평가라는 녀석이야. A~B는 몇 명. C, D, F는 몇 명. 이미 정해져 있어. 요새 상대평가는 없어지는 추세라는데. 지금 내 앞에 작은 네모상자에는 절대평가를 해야 하는 옵션이 보이질 않아. 전혀 없어. 모두가 A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도 안타깝게 생각해."


"모두들 충분히 수업에 열심히 했어. 근데, 학점을 개판으로 받으면 엄청 억울하겠지. 충분히 이해해.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 나름 열심히 했는데. 시험 문제 하나 틀렸다고 해서. 너무 어처구니없는 D라는 학점을 받아야 하는 상황 말이야. 나도 당해봤어. 상대평가를 녀석한테. 너의 억울함을 충분히 이해해."


"그거 알아? 정말 FM대로 하면 C, D도 많고 F도 상당하다는 사실을. 그래. 나름대로 고민하고 사과상자 안에 잘 정리해서 달콤한 사과를 담고 싶어. 그래도 옆에 놓인 C, D라는 사과들은 하소연을 하지. 나도 알아. 내가 너무 비정한 사과장수라는 사실을. 사과상자는 좀 더 크게 한 바구니에 담고 싶어. 하지만 우리 사장님은 분산투자를 좋아하시나 봐. 여러 상자에 담고 싶어 하거든."


"나도 속상해. 상대평가가 너무 싫어. 하지만 우리에겐 1학기가 남아있잖아.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오는 계절 말이야. 다른 상자로 가고 싶은 사과들이 있을 거야. 내가 응원할게. 빛을 보게 될 날을 응원할게. 다만, 지금 그곳에 담기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야. 모두가 달콤한 사과야. 힘내."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길......."


-4개의 상자에 담긴 사과향을 맡으며......


<메인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hoho8413/10024>

작가의 이전글 다리(bridg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