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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l 17. 2019

퇴근 후

아이스크림 사세요

퇴근 후,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건 관심 밖이다. 허전한 마음만이 신경 쓰인다. 이 마음을 채워줄 유일한 존재가 있다. 바로 딸이다. 딸은 참 좋다.


지난 4년 전, 둘째가 아들이길 바랐던 이기적인 생각은 죄가 되었다. 미안함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간다. 나중에 사춘기가 된 딸이 뭐라고 화를 내더라도 그냥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분명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는 그날에, 농담으로 ‘아들이면 좋을...’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지껄였다.


퇴근 후,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건 아내의 능력이 크다. 신혼 때는 밥을 할 줄 알았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밥은 밥통이 알아서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다 보니 저녁은 밥이 중요하지 않았다. 메인 요리와 반찬이 중요하다. 지금, 나는 할 줄 모른다. 아니. 할 일이 없어서 까먹었다. 할 생각도 없어졌다. 모두 아내 때문이다. 그녀도 직장에서 힘이 들 텐데. 참 대단하다. 분명, 능력자 맞다. 힘든 내색은 가끔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 배를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나를 잘 챙겨준다. 따뜻한 집밥이 어느 유명한 식당 요리보다 좋다. 사실 비싼 요리가 맛은 있겠지만, 그래도 아내가 챙겨주는 집밥은 비교할 수 없다. 아쉽게도 이를 넘어서는 존재가 있다.


퇴근 후, 허전한 마음을 채워 주는 딸과 아이스크림 놀이를 했다. 나는 손님이다. 갈색 사자 머리 작은 숙녀는 내게 말한다.

“아이스크림 사세요. 아이스크림 사세요. 맛있는 아이스크림 있어요.”

나는 피곤하다. 이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아이스크림 사장님은 내 눈과 뚫어지게 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손님이다.

“네. 저기 딸기 아이스크림 하나 주세요.”

“네. 딸기 아이스크림은 없습니다. 다 팔렸어요. 그럼 제가 추천해 드릴게요.”

순간, 나는 멈칫했다. 딸기 아이스크림 말고 따로 생각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으며 콧노래를 부르며 말한다.

“여기 바닐라 아이스크림 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다행이다. 눈치를 못 쳇군. 내 허전한 목구멍에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한 사발로 들어온다. 싱그럽고 상쾌하고 시원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아주 달달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맛이 정말 좋다.


퇴근 후, 졸리고 자고 싶다. 귀찮고 짜증이 난다. 이미 집 앞에 서서 0부터 10까지 적혀 있는 작은 번호 키을 바라본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익숙한 자리로 손가락을 흔들어댄다. 문이 열린다. 무엇인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4년 전 ‘아들이면 좋을...’ 그 존재가 이렇게 말을 한다.


‘아이스크림 사세요.’


졸리고 자고 싶고 귀찮고 짜증 나는 것은 모두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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