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Jul 17. 2019

사파리

마라탕

사파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 그루 나무가 있다. 잎사귀가 풍성한 나무는 더위에 지친 하이에나 두 마리를 감싸고 있다. 나무는 지그시 눈을 뜨고 귀를 열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그들은 넓은 초원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잠시나마 쉴 곳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습한 공기가 그들의 코를 마비시키는 듯하다. 커다란 나무 아래 드넓은 초원에 우두커니 앉아서 배고픔을 느끼는 그들은 하늘을 쳐다본다. 그 순간 하늘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며 저 멀리 먹구름이 다가오는 걸 느낀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끈적거리는 혀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


뚜 뚜두 뚜두둑


작은 빗방울 하나가 그들의 콧등에 앉더니 하이에나의 거침없는 야성을 잠재운다. 배고픔을 잊게 하고 마른 혓바닥에 찬 공기를 불어넣는다. 이중 뒷발이 길쭉하고 배고픔에 마른 한 녀석이 눈을 감으며 콧등에 떨어진 작은 빗방울이 연주하는 소리를 음미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직 목구멍에 남은 임팔라 살점 하나가 느껴진다. 빗방울이 콧등에 부딪쳐 그의 목을 떨게 하고 있다. 혀를 내밀며 수십 개의 빗방울을 핥아서 목으로 넘긴다. 어제 잡은 임팔라의 뜨거운 피가 느껴진다.


다른 한 마리는 제법 배가 나왔으며 앞발이 뒷발보다 좀 길다.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옆에서 빗방울 먹는 녀석을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이다. 이윽고 그는 거대한 안식처가 된 나무에 영역 표시를 하고는 뒷발보다 조금 긴 앞발을 앞으로 내밀며 빗물에 고인 웅덩이로 다가간다. 그의 거칠고 건조한 목젖은 이내 시원하고 강물처럼 빗방울로 채워졌다. 둘은 기분 좋은 갈증을 함께하며 제법 유연해진 목을 뒤로 젖혀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배고파


빗물에 젖은 초원은 먹을거리가 풍성한 골목식당이다. 정오의 태양은 우리를 배고픔이라는 감정과 생리적 갈증을 유발한다. 작은 빗방울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린다. ‘우리는 신선하고 제법 건강합니다. 제발 저희를 찾아보세요.’ 그와 내 귓가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듬성듬성 우뚝 솟아난 나무 아래에 우두커니 사자 한 마리가 낮잠을 자고 있다. 식사가 다 끝난 모양이다. 우리는 초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그들의 말에 이끌려 걷고 있다.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를 다시 들었다. ‘여기! 바닥만 보지 마시고, 살짝 고개를 들어 나뭇잎을 보세요. 네. 맞아요. 그렇게 보세요. 여기예요. 조금만’


배고파


그들의 목소리에 이끌려 작은 나무 한 그루에 도착했다. 주위에 사자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나무 앞에서 그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 맞아요. 저희가 여러분들의 허기진 배를 충분히 채워드릴게요. 건강합니다. 이걸 드시면 앞발과 뒷발에 힘이 넘치고 심지어 뒤태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당장은 아닙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는 우두커니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잠시 배가 조금 나오고 앞발이 뒷발보다 조금 긴 녀석이 몸이 무거운지 그 자리에 털썩 앉았다. 옆에 있던 뒷발이 조금 길고 마른 녀석도 똑같이 앉았다.

우리는 그들이 즐거워하며 웃음 짓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도 즐거웠다. 배고픔은 잠시 내려두고 그들이 웃음 짓는 소리에 냄새를 듣고 맡아보았다.


둥글고 넓은 웅덩이에 그들은 헤엄치고 있었다. 즐거워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 녀석은 길쭉길쭉한 모양으로 어느 녀석은 투명하고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모양도 생김새도 제각각인 녀석들이 웅덩이로 몰려왔다. 그들은 자신의 모양과 냄새를 이 넓은 웅덩이에 쏟아내고 있었다. 한바탕 신나는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브루스를 추는가 싶더니 합창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축제를 벌였다. 그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혹시나 그들의 축제에 누가 되지 않을까 우리는 아무 말없이 기다렸다.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축제가 끝나고 잔잔한 파도처럼 조용해졌다. 얼마나 흔들고 놀아댔는지 흥분된 열기는 새벽녘 안개처럼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축제가 남긴 그들의 흔적을 코로 맡고 눈으로 즐기고 귀로 느꼈다.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없어진 게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의 축제에  빠져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낙엽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