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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l 26. 2019

장마철 비 오는 날

북소리

한여름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을 경험하게 된다. 커다란 우산을 방패 삼아 출근길에 나서면 그리 오래지 않아 축축하게 젖은 바지 밑단과 신발을 보게 된다. 바람 한 점 없는 비 오는 날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축 늘어진 고무처럼 늘어지는 기분이 든다. 기력 없는 나를 한탄하며 평소에 느끼지 못한 잔근육의 기운 없는 소리를 듣는다.


잠시 비가 내리지 않는 시간을 감사하며 우산을 접고 걸어간다. 다행히 옷과 신발은 자연스레 건조되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또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귀가 서두른다.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날이 찾아왔지만 비 내리는 장마철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마저 힘없고 나약한 노인처럼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에는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그 어느 창조물이 얹혀 있었다. 축 늘어진 어깨만큼 어디론가 걸어가는 발걸음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인 괴물(프랑켄슈타인)의 다리와 같았다.


집이라는 공간은 피로한 몸과 나른한 마음의 안식처다. 문을 열자마자 힘들게 걸어온 온몸의 온기는 진득진득한 공기와 상호작용을 하며 머리털 작은 숨구멍에 열기를 내뿜어낸다. 피부 속 냉온 감각은 어느새 서로 질투하며 다투고 있다. 성질 급한 온열 감각을 잠재우기에 차가운 물에 샤워만 한 것도 없다. 얼음물처럼 느끼기 위해 샤워기를 일부러 어깨에 집중시킨다. 드디어 한 숨 섞인 탄성으로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다.


어린 시절, 그날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에 부딪치는 굵은 빚 방울은 북을 치는 듯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생각은 접아야 했고 이미 오래전부터 접었다. 꼼짝하지 못하는 내가 어느 덫에 갇힌 생쥐와 같았다. 유일한 친구인 선풍기는 딸딸거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 장마철에는 나가 놀 생각은 하지 마. 북치는 소리는 차츰 작아졌다. 슬러퍼도 신지 않고 플라스틱과 목재로 만들어진 허름한 문을 있는 힘껏 잡아끌어 열어봤다. 내 발에 느껴지는 빗물과 진흙탕은 밖에 놀지 못하는 아쉬움을 한층 더 상승시켰다. 나는 심술부리듯 문을 세게 닫아버리고 유일한 친구에게 간다.


빗소리의 잔상을 기억한 채 눈을 뜬다. 집은 갇힌 공간이지만 어느 곳보다 아늑한 안식처다. 진득진득한 공기는 안과 밖 구별 없이 여행 중이다. 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다. 건조한 공간은 이내 시원한 숲 속처럼 한여름을 얼어붙게 한다. 지난 과거, 석면 슬레이트 지붕에 부딪치는 북소리가 아련하게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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