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Jul 30. 2019

아이스크림 한 조각

행복 한 조각

“아빠~ 배 아파”

“뭘 먹었는데. 배가 이렇게 차가울까?”

내 손의 작은 온기와 아프지 말라는 소망을 담아 작은 아이의 배를 쓰다듬는다. 아이는 따뜻함이 좋은지 배시시 웃으며 옆구리에 꽂아둔 고양이 인형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감싸 안았다. 잠시 후 그 작은 눈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속삭였다.

“아빠~ 배가 안 아파”


배탈이 심하지 않다는 판단에 안도감을 느끼며 고양이 인형을 쓰다듬는 작은 꼬마 숙녀에게 물어봤다.

“근데, 아이스크림 몇 개 먹었어?”

“두 개”

“아이고 그래서 배가 이렇게 차갑구나.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서 이렇게 배가 아프지?”

“으응”


내심 그 표정과 말투는 아이스크림에 대한 원망과 아빠로부터 관심과 격려를 받고 싶어 하는 어린 여자 아이의 애교 그 자체다. 나는 이를 모르는척하며 다정다감하게 작은 꼬마 숙녀에게 물어본다.

“아빠가 이렇게 만져주니까. 따뜻하지?”

“으응”

“아이스크림은 맛있었어?”

“으응”

“내일도 두 개 먹으면 배가 또 아플 텐데”

“안 먹을래. 아빠! 이제 말 시키지 마. 졸려. 나 잘래”

4살짜리 작은 꼬마 숙녀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끼며 잠을 청했다.





아이스크림 한 조각은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언제나 행복 한 조각이다.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만화를 보며 행복 한 조각을 먹는다. 부럽다. 자신의 손바닥보다 큰 아이스크림은 어느새 한 줄기 나무 뼈다귀만 남게 된다. 냉장고라는 보물창고에는 시원하고 달달한 행복 한 조각이 항상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 너무 많이 먹어서 작은 숙녀처럼 배앓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아이스크림 한 조각이 행복 한 조각이면 그만이다.


내 보물창고에서 아이스크림 한 조각을 찾아 한 입 베어 먹고 싶다. 이가 시리도록 먹고 싶다. 행복 한 조각이 항상 보물창고에 가득하게 차 있었으면 좋겠다. 허무하고 허탈한 일상 속에 지쳐, 몸도 마음도 우울해질 때, 그 보물창고에서 행복 한 조각을 꺼내 들고 소파에 앉고 싶다. 기왕이면 재미난 영화 한 편도 있었으면 좋을 것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어떡하지? 오히려 배앓이보다 배가 너무 불러,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지도 모른다. 나른한 점심에 꿀맛 같은 단잠처럼... 상상은 현실이 되어야 한다. 눈을 감고 내 보물창고를 찾아본다.


아이들에게 보물창고는 냉장고다. 나에게 보물창고는 월급통장에 마지막으로 찍힌 숫자다. 마이너스 기호가 없이 많은 숫자가 춤을 추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달달한 행복 한 조각을 먹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통장에 남은 잔고만 볼 때마다 나는 한 숨 한 바가지가 나온다는. 흔한 가장의 월급통장. 그래도 어떻게 해?! 아이들의 보물창고에 아이스크림을 수시로 채워두려면 내 보물창고에도 부지런히 숫자를 채워 넣어야 한다. 그래야 각자 아이스크림 한 조각을 들 수 있다.


광명동굴(2019년)

내 보물창고에 숫자가 줄거나 혹은 마이너스 기호를 달지 않도록 해야 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어느 깊은 산 골짜기에 나 홀로 움막 안에 도인처럼 벽만 보며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소리만 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따위 수련으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은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내 보물창고에 숫자가 넘치도록 잘 지켜야 한다. 그래야 아이스크림 한 조각만큼 행복 한 조각도 얻을 수 있다. 내 보물창고를 회피하면 안 된다. 현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없거나 빈 상자가 될 경우에 아이들의 행복 한 조각도 보장할 수 없을 테니.


[메인 그림 by 김영록]

작가의 이전글 꿈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