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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l 31. 2019

보석 피자

피자 한 판은 다 먹어 줘야 제대로 먹는 법이다. 잘 반죽된 도에 담백한 불고기가 얹어지면 정말 맛은 환상이다. 여기에 모차렐라 치즈가 추가되면 입안에는 파도에 요동치는 고급 요트처럼 엄청난 풍미가 사르르 녹아내린다. 마지막 한 입에 고구마 무스에 점령당한 피자 크러스트는 또 다른 세계로 사유를 만끽해 준다.


8조각이 사이좋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그중 제일 맛 좋고 탐나는 한 녀석을 그들 무리에서 떼어낸다. 탐스럽지만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 그 녀석은 다름 아닌 보석 피자다. 오븐에 잘 구워진 치즈 아래 피자 도우에는 살아 숨 쉬는 숨소리가 느껴진다. 나른한 점심에 포근한 잠에 빠져 있는 갓난아이의 뽀송뽀송한 배는 위아래로 움직이며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말한다. 푸르스름한 광채가 유난히 끌리게 하는 에머날드 반지 한 쌍은 나를 쳐다보며 유혹하고 있다. 노란 색감에 언제가 우두커니 버티고 있는 금팔찌는 나를 보며 한 없이 웃고만 있다.


한 입 베어 물고 손으로 보석들을 집에 먹어 본다. 의외로 아삭한 소리와 함께 담백하고 은은한 맛은 혀끝으로 전해지는 신경물질을 뇌의 신비한 세상에 외롭게 떠돌아다니는 미각세포를 춤추게 한다. 동공이 커지고 후각세포가 활성화되는 기이한 현상은 더욱 우주의 맛을 확장시켜준다. 가볍게 느껴지는 손안에 지갑을 열어본다. 그 속에는 보석만큼 달콤한 배춧잎이 나의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뇌와 몸 구석구석에 잠재되어 있던 세포들이 포만감을 느끼며 아우성이다.


보석 피자는 나를 행복하게 한다. 배를 채우기 위한 하나의 덩어리를 넘어 우주라는 뇌에서 무지갯빛 화사한 물감을 흩어 뿌린다. 불꽃놀이는 한 동안 내 혀에서 감돌고 오감을 자극하는 황홀한 보석들은 내 정수리 위에서 달빛 축제를 벌인다. 남은 보석 피자 한 조각은 기다리다 지쳐 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치즈에 파묻혀 있는 보석들을 발광시켜 끄집어내기를 반복한다. 그들의 눈빛 하나하나는 태양에서 태어난 플라스마 입자가 공허한 공간에 썰매를 타듯 미끄러지며 만들어낸 오로라처럼 서서히 색동옷을 고쳐 입으며 춤을 춘다.


옆에 있던 토끼 한 마리는 내 시선을 쫓아가며 남은 보석 피자 한 조각을 유심히 쳐다본다. 나의 세계 나의 공간 나의 유일한 축제와 무한한 우주에 먹다 남은 당근 한 조각을 뱉어낸다. 어느새 보석들은 아직 숨이 남아 있는 치즈 아래로 숨어 버리고 그로 인해 찬란하게 빛나는 오로라 빛은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이런 욕심 많은 토끼 녀석 같으니.



illustrated by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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