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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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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피의 파티에서

빛 한 줄기 없는 이 어두 컴컴한 공간에서 8시간째 대기하고 있다. 우리는 숨죽이며 조용히 밤을 기다리고 있다. 잠시 잠을 청해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배가 고파서 3쌍의 가늘고 긴 다리는 힘이 없다.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바늘처럼 촘촘한 잔털이 내 온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겹눈으로 대롱처럼 긴 바늘 모양의 아랫입술을 훔쳐봤다. 어젯밤 치렀던 찬란한 파티가 떠오른다.


"너는 저쪽 구석을 맡아. 나는 이쪽 방향으로 숨어 있을게."

나는 꽁무니에 붙어 나를 따라오는 한 녀석에게 길을 알려줬다. 가볍지만 내 교통수단인 한 쌍의 날개를 힘차게 흔들며 주위를 둘러봤다. 사막처럼 광활한 허공, 우리의 놀이터이자 일터고 삶의 공간이다. 내 머리 위에는 온몸이 빛 덩어리로 우리를 유혹하는 녀석이 조용히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 다행히 빛은 없었다. 하지만, 그 녀석에게 다가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와 조우하는 순간, 내 몸은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더 이상 날지 못할 수도 있다. 조심하는 게 좋다. 가까이 가기에 먼 당신을 뒤로 주위를 둘러보며, 한 채 빛 한 줄기 없는 우리만의 공간을 찾아 헤맸다. 옆에서 나와 함께 활공을 펼치던 녀석은 이미 자신의 일터로 갔다. 참 놀라운 녀석이다. 어디에서든 살아남을 것 같다. 지금은 나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더듬이로 온 신경을 집중하며 나의 공간을 찾는다.


"난 여기에 있을 테니. 내 걱정 말고 너희들 먼저 가렴."

4시 방향에서 힘없는 날개를 흔들거리는 우리 선배이나 동료는 더 이상 멀리 가고 싶지 않았다. 노란빛이 영롱한 작은 공간에 머물렀다. 아직은 컴컴하다. 그곳에는 수시로 인간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다. 정말 위험한 곳이다. 간혹 수천 아니 수억조의 빗 방울이 떨어지며 거대한 폭포가 우리를 덮치기도 한다. 나는 웬만해서 그곳에 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 선배이자 동료는 그곳이 자신이 가야 할 마지막 공간인 양 스스럼없이 그곳에 갔다. 부디 오늘 밤 화려한 파티에 첫 희생양이 되지 않길 빌어본다.


"다들 움직이지 마. 인간들이 들어오고 있어. 야! 거기 너! 움직이지 말란 말이야!"

현관문에 있던 한 녀석이 소리를 치며 상황을 전파하고 있었다. 나는 힘이 풀린 다리를 긴장하며 아무런 미동 없이 인간들을 지켜봤다. 작은 인간 둘과 큰 인간 둘이다. 작은 인간들은 소리를 지른다. 큰 인간들은 조용히 우리를 응시하는 듯하더니 다른 공간으로 걸어갔다. 우리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다. 느낌이 좋지 않다. 작은 인간 하나가 노란빛 공간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문은 닫혔다. 나는 우리의 선배이자 동료가 걱정되었다. 부디 움직이지 않고 구석진 곳에 있기를... 하지만, 내 기도는 빗나갔다.


"엄마~ 여기 모기!"

정체가 탈로 났다. 작은 인간의 외마디에 큰 인간 하나가 그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쿵쿵거리는 몇 번의 소리가 들렸고, 작은 인간과 큰 인간 그 공간에서 나왔다. 나는 재빨리 그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선배님~"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노란빛 공간은 다시 암흑으로 변했다. 이를 지켜본 우리 동료들이 비통한 표정을 짓는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선배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조용히 흐느끼며 기다렸다. 내가 있는 이 음침한 공간은 어느 누구라도 찾기 힘든 곳이다. 인간들이 잠을 자는 저녁까지 나는 기다렸다. 아니 우리 모두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아무런 움직임을 갖지 않았다.


인간들은 밝게 빛나는 모든 것들을 끄고 있었다. 드디어 저녁이 온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옆에 있던 동료들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장롱 구석에서 두 곁눈이 보인다. 또 다른 녀석은 아주 대담하게 인간들이 자주 다니는 냄새나는 식탁에 있었다. 저 멀리 한 녀석이 보인다. 연분홍색 커튼에 있었다. 조금 불안해 보인다. 아직 거실에 있는 등이 꺼지지 않았는데, 그 녀석이 움직인다. 지금은 때가 아닌데도 말이다. 아마도 배고픔을 이겨내지 못한 모양이다. 곁눈 뒤쪽으로 날개가 펼쳐지더니 커튼 사이를 통해 아래 위로 움직였다. 불안한 비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빠~ 여기 모기!"

작은 인간의 소리와 함께 분홍색 커튼은 검은 파도처럼 흔들렸다. 방금까지 있던 위아래로 날갯짓하던 녀석은 갈팡질팡하며 어디론가 도망쳤다. 하지만, 큰 인간 하나가 달려가더니 널찍한 두 손바닥을 허공에 들더니 그 녀석을 덮쳤다. 나의 온몸은 작은 경련으로 그 녀석의 생사를 감지했다. 아직 어린 녀석이다. 제대로 된 피맛도 모른 채 떠나갔다. 인간의 피가 얼마나 신선하고 다양한지 모른 채...


참을 수 없는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파티는 곧 시작될 것이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배고픔을 견뎌야 한다. 눈을 감고 기도한다. 남은 두 녀석은 나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동료들이여~ 참아야 한다. 인간의 피를 맛볼 시간이 곧 다가올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작은 인간 하나가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잠시 후 큰 인간 하나가 그 옆에 누웠다. 나머지 인간들은 하나 둘 자기 자리에 누워 눈을 감는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어둠이라는 미끼를 그들이 물어야 한다. 꿈이라는 시간이 다가와야 한다. 완전한 어둠이 이 세상을 지배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파티가 시작된다. 하나 둘 인간들은 어둠의 미끼를 물고 있다. 잠시 후, 꿈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피의 세계로 도달할 것이다.


때가 되었다. 우리의 찬란한 파티를 위하여... 나는 힘겹게 날개를 펴고 비상했다. 우두커니 나를 따라준 두 마리 동료가 내 비행에 맞춰 각자의 타깃으로 향했다. 나는 큰 인간의 발로, 너는 작은 인간의 팔로, 마지막 녀석은 큰 인간의 얼굴로, 우리는 향했다.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고 우리의 항해를 마칠 시간이다. 돛을 내려 약탈할 시간이다. 인간들의 신선한 피에 발을 내딛는다.


나는 타깃에 도착했다. 큰 인간의 다리다. 창대한 파티를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가느다란 3쌍의 다리는 균형 있게 인간의 털 사이에 안착하고, 날개는 조용히 접어서 은폐시킨다. 마지막으로 빨대 모양의 주둥이를 뻗어 그 자태를 확인한다. 이제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다. 나는 눈을 감고 숙주의 피부 아래를 보며 시퍼런 창과 같은 주둥이를 꽂아 놓았다.


어둠의 파티가 순식간에 빛의 향연으로 뒤덮였다. 나의 곁눈은 오히려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느낌이 좋지 않다. 아주 재빠르게 날개를 펴고 비상해야 한다. 내 몸은 본능적이다. 나의 날개의 가느다란 다리는 숙주의 피부에서 멀어지려 한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주둥이가 빠지지 않는다. 피의 맛을 보기도 전에 나는 긴급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저 멀리 갑작스러운 큰 인간 하나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아이고, 모기 새끼가 있나~ 우리 새끼들 다 뜯어먹는다."

이미 늦었다. 작은 인간의 팔에 있던 녀석은 이미 잡혔다. 또 다른 큰 인간의 얼굴에 있던 녀석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남은 파티의 주인공인 나는 지금도 숙주의 피부에서 주둥이를 빼지 못했다.


저 멀리 작은 인간 하나가 소리치며 달려온다.

"할머니~ 여기 모기!"


[illustrated by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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