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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11. 2019

공간

병은 전파된다.

평소에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이곳은 아직도 적응 중이다. 여기에 온지도 2년이 되어간다. 일주일 중 평일은 내게 없다. 하루 24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나는 열심히 준비된 일을 할 뿐이다. 일을 마치고 나의 집이라는 공간에 들어간다. 홀로 남았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나는 외로움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남은 이 공간은 감옥으로 변하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다. 에어컨과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은 내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자 위로일 뿐이다. 내 마음은 텅 빈 공간이다. 외로움이 가득 차 있다.


주말 아침이다. 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잠이 깼다. 어제 남은 맥주잔을 치우며 설거지를 한다. 아침은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나 홀로 나의 공간 속을 채울 뿐이다. 새삼스럽게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결에 받았다. 그녀의 전화다. 나는 무섭고 떨렸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녀의 소리만 들었다. 내 입에서는 뻔한 그 대답뿐이다. 나의 온몸은 떨렸다. “네~”


그녀와 통화 후,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머리를 흔들고 이제야 제대로 일어났다. 나는 이를 닦고 샤워를 했다. 새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본다. 맵시가 아주 나쁘지 않다. 엉클어진 머릿결에 드라이기로 젖은 머리를 말려본다. 하지만 머리가 자꾸만 뻗친다. 이대로 가만히 놔둘 수 없다. 며칠 전에 새로 중고로 구입한 고데기를 꺼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화장을 하고 옷을 고르고 신발을 준비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시 화장을 지우고 옷을 벗고 신발장을 열어봤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 목걸이를 목에 걸고 귀걸이를 골랐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화장을 다시 하고, 머리를 손질했다. 목걸이를 걸고 귀걸이를 달았다. 입술은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펄 브라운의 아이라이너를 들고 거울을 본다. 아직도 대학생 티가 남은 둥글고 애땐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다시 헝클어 버리고 목걸이를 풀었다. 남은 귀걸이는 화장대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나는 울었다. 전화기를 뚫어지게 보며 흐느꼈다.


오늘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 그 공간에서 일을 했다. 스테이션에서 앞서 근무한 선생님으로부터 환자의 정보를 받았다. 인수인계 시간인 것이다. 나는 한 손엔 볼펜을 또 다른 한 손엔 메모장을 펼치고 선생님이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받아 적었다. 아직까지 일이 손에 안 잡혀서 그런 게 아니다. 나의 몸은 이미 기억된 습관처럼 그렇게 일과를 시작하는 것뿐이다. 습관은 참 무섭다.


카트에 여러 약품을 담아 넣는다. 미리 준비한 주사기를 확인한다. 명단을 확인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메모장과 함께 생각한다. 순식간에 가상으로 내가 할 일이 정리된다. 아직 베테랑 간호사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분명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은 가지고 있다. 스테이션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환자의 호출 소리다. 나는 하던 일이 있다. 아직 준비할 게 남아 있다. 하지만 내가 가야 할 것 같다. 옆에 있던 선생님께서 가보라는 말을 남겼다. 눈 앞에 준비한 것들을 한 번 스캔하며 벨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갔다. 환자를 돌보는 일은 내 직업이다. 사명감이라고 말하자면 나처럼 멀쩡하게 이 공간을 벗어나는 걸 도와주는 것이다.


매번 혼난다. 매일 혼나고, 오늘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되는 게 없는 게 나인가 보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실수한 모든 것들이 부메랑처럼 그들의 입으로 전해 온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는 혼난다. 숨을 제대로 쉬기 힘들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정말 이 공간에 있기가 너무 힘들다. 그녀의 말이 내 귀에 들릴 때마다 고개가 숙여진다. 땅바닥까지 숙여진다. 내 모습은 주인에게 호되게 꾸지람 먹은 강아지와 같았다. 내 꽁지는 어느새 돌돌 말아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나는 울지도 못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마음 졸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옷과 신발을 갈아 신고 가방을 맸다. 방금까지 마음 졸이며 나를 지켜본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너무 자책하지 마. 오늘은 그만 쉬어. 내일 오전에 전화할게.” 나는 고개를 숙이고 ‘네’라는 대답을 했다. 스테이지를 건너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나만의 공간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다. 다만 더운 공기만이 방금까지 이 공간의 주인이라는 걸 알려줬다. 에어컨을 켰다.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화장을 지우고 옷을 벗고 샤워를 한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피곤하고 졸릴 뿐이다. 하지만 그대로 잠이 들지 의문이다. 일어나 냉장고에 남겨둔 맥주 한 캔을 발견했다.


‘오. 나의 친구여~’




다른 공간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같은 공간이 될 수 있다. 어느 때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와 같이 즐거운 공간이 된다. 반대로 내 화를 참지 못하고 우울함을 간직한 채 외롭게 싸워야 하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의 프레임은 내게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지 모른다. 공간이라는 프레임에서 시작해 결국 내 마음에 안착수도 있다. 마음의 창이라고 부르는 프레임에 갇혀 힘들어하는 또 다른 환자가 존재한다. 어느 순간에나 환자로 전환될 수 있다. 강한 마음으로 그 더러운 공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니면 내 마음의 스트레스는 그 공간에 갇혀 적응할지도 모른다.


가끔 같은 공간에서 누가 누구에게 혼을 내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한다. 못 본척하며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개를 떨구고 있는 존재의 얼굴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이 보인다. 새내기 직장인의 감정을 쫓아가고 싶었다.


[illustrated by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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