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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12. 2019

토끼 박사

토끼 박사는 달팽이관 연구에 관하여 세계 최고 전문가다. 수년간 연구했다. 박사의 연구는 네이처와 같은 유명한 저널에 수없이 등재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든 석학들은 "달팽이관의 정석"이라는 저서를 통해 청각기관을 참고했고, 이를 바탕으로 의학, 철학, 정치, 공학, 심리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했다. 최근, 새롭게 출간한 "달팽이관의 진실"에서 토끼 박사는 시각, 미각, 후각, 촉각과 더불어 청각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달팽이관은 제게 크나큰 연구 대상입니다. 그간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 셔터 소리와 불빛이 요란한 기사 회견장에서 토끼 박사는 마이크를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청각은 더 이상 불필요합니다."


좌중은 모두 탄성을 지렸다. 기자들은 카메라와 노트북에 연신 손과 손가락을 움직였다.

"와~ 대단하십니다. 정말 최고예요~ 어떻게 그런 진리를 발견하셨나요~"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생전에 진실을 알았다는 큰 기쁨에 도취했다. 토끼 박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귀를 만졌다. 좌중들의 탄성 소리를 즐기는 듯 보였다. 잠시 후, 웅성거리는 좌중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을 지켜보던 토끼 박사는 오른쪽 앞발을 높이 쳐들고 이렇게 말했다.


"청각은 필요 없습니다. 달팽이관에 영양을 공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제거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달팽이관은 암으로 변할 겁니다. 저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알았습니다. 크나큰 진실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토끼 박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상기된 표정으로 사람들을 훑어봤다.

"청각은 달팽이관입니다. 이제 청각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달팽이관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을 앗아가는 암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청각은 없어져야 합니다."


토끼 박사의 발표 내용은 언론과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의 주장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곧 행동으로 옮기도록 했다. 가까운 의원과 병원에는 많은 인파로 인하여 북새통이 되었다. 사람들의 발길에 병원에서는 때아닌 특화를 누렸다.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다. 모든 의료진은 정신이 없었다. 응급환자와 중증환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달팽이관을 제거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인구의 70%는 달팽이관이 제거되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 10명 중 7명이 달팽이관이 없었다. 아직 시술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많은 인파들은 아직도 병원 앞에 줄을 서고 진을 치고 있었다. 어느 이름 모를 병원 앞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옆에는 KYL방송국에서 나온 아나운서가 있었다. 아나운서는 시술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시술을 받지 못하고 있으신데. 얼마나 기다리셨나요?"

"어제는 포기하고, 아침 일찍부터 왔습니다. 아직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여기를 보세요. 어제부터 텐트 치고 기다리시는 분도 있어요."

"정말 많이 기다려야 하는군요. 그래도 잠시 후 시술을 받게 되실 텐데, 지금 기분은 어떠십니까?"


아나운서 말에 그 사람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기대하고 있어요. 이 정도 기다리는 건 껌이죠. 괜찮아요. 방금 시술하고 나오신 분한테 여쭈어 봤는데. 행복해 보였어요. 저를 보고 웃더라고요."

"네. 그렇군요. 시술 잘 받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나운서는 인터뷰를 마치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제 저희는 시술하신 분을 인터뷰하러 가 보겠습니다. "


병원 문이 열리더니 한 사람이 나왔다. 그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안녕하세요. KYL방송에서 나왔습니다. 방금 달팽이관 제거 시술을 마치신 거죠? 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소감 좀 말씀해 주세요."

"......"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입가에 행복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길거리에 마주친 사람들 10명 중 9명은 달팽이관을 제거했다. 모두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고 각자의 갈 길을 가고 있다. 도로 위 자동차는 더 이상 빵빵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시끄러운 소음에 괴로워하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 말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서로 눈빛과 몸짓으로 대화할 뿐이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한 아이가 엄마손을 꼭 잡고 걸었다. 아이는 엄마 얼굴을 보며 조잘거렸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보며 마냥 미소만 지을 뿐이다. 엄마의 미소는 아이에겐 칭찬이다. 아이는 힘이 솟았다. 아이는 우렁찬 목소리로 계속 조잘거렸다. 엄마는 그냥 어린아이를 바라볼 뿐이다.



이 글은 장애에 관한 글이 아니다.

[소통을 하지 말자]라는 토끼의 주장을 상상해 본 것이다.

소통,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정의한다.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하지만 직장에서 혹은 일상에서 [막히고 잘 안 통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토끼 박사의 주장을 신념으로 받아들인 인간들은 존재할지 모른다.

일부러 어떤 존재들은 달팽이관을 제거하고 불통을 즐거워하며 미소를 짓고 있지는 않을까?


[illustrated by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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