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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Aug 13. 2019

로키-G85

요새 자꾸만 기력이 없다. 처음에는 한 번 충전에 한 달 정도는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기껏해야 1주일이면 에너지는 끝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충전하는 빈도가 많아지고 있다. 오늘은 꼭 충전해야 한다.


내 이름은 로키-G85다. 나는 암환자를 치료한다. 나는 튼튼한 허벅지와 팔뚝 그리고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 내 임무는 방사선을 이용해 암으로 고통받는 인간들을 치유해 주는 것이다. 환자들의 몸 안에 박혀 있는 아니, 살아 숨 쉬는 세포들을 박멸하는 일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병원에서 정해준 지침대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내가 주로 있는 곳은 방사선 치료실이다. 화사한 아이보리색이 방 전체를 밝게 비추며 색이 변하고 있다. 바닥은 푸른 하늘에 안개구름이 스크린으로 비추고 있다. 천장은 지구와 가까운 토성과 천왕성이 보인다. 간혹 혜성이 지나간다. 보라색 혜성 꼬리 저 편에는 지구에서 약 20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가 나선형으로 기울어져 보인다. 벽면에서 누군가 나타난다. 나를 도와주는 비서-T50이다. 나를 닮은 그녀가 내 앞에 서서 말한다.


반가워요. 로키-G85!

오늘 당신이 치료할 환자에 대해 말할게요.

이름은 마르코-78, 나이는 119로 컨디션은 양호합니다.

타깃은 다음과 같습니다.

Primary는 Lung ca., RUL, 20 mm, Biology size 23 mm

자세한 내용은 이미 확인하셨겠죠?

이미 인증하셔서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벽 스크린 안에 비서-T50은 손가락을 살짝 튕겼다. 환자 얼굴과 비서-T50이 말해준 정보는 사라지고 환자의 전신 생체 마커가 표시된 의료영상이 띄어졌다. 나는 어떤 방사선을 사용할 것이며 처방 선량은 어느 정도이고, 어떤 방식이 환자 치료에 최적인지 결정했다.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 일터에서 내 동반자인 비서-T50은 나를 보며 말했다.

“확인하셨나요? 이상이 없으시면 승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굿”

“승인 완료”

비서-T50은 내게 잉크를 하며 한 마디를 던지고 벽 스크린 안으로 사라졌다.

“좋은 치료 부탁해요.”


대기 중이던 환자를 치료실 중앙으로 모시고 왔다. 환자는 아주 편안한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로키-G85”

“걱정하지 마세요.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몇 분이면 끝나나?”

“정확히 지금부터 1분 20초면 끝납니다.”

“그래… 그럼 부탁하네.”


나는 미리 준비된 약물을 투입했다. 환자는 스스로 숨을 멈추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부 장기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미리 준비된 방사선 치료기를 그의 우측 가슴을 향해 조준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탄소(carbon) 입자가 암세포의 가장자리부터 중앙을 지나 끝 지점까지 아름답게 코팅을 하고 있었다. 미리 계산된 입자 전달 시간은 단 9.4초다. 방사선 전달 단계 완료.


다음 단계는 확인단계다. 이 단계는 암세포의 제거 정도를 확인하고 더 진행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기존 의료정보와 현재 정보를 종합해 판단한다. 확인단계가 끝났다. 결과는 조금 아쉬웠다. 암세포 중앙에서 약 0.5 mm 정도 범위에 방사선이 더 필요하다. 나는  빠른 속도로 방사선치료기를 준비했다. 그리고 그곳을 정밀하게 공략했다. 다시 확인했다. 암세포 제거 정도와 주위 정상세포의 피해 정도는 예상과 100% 일치했다. 시간이 3초 지연되었다. 나는 미리 입력된 행동 지침에 따라 불필요한 동선을 제거하고 마무리 단계를 준비했다.


나는 미리 준비된 약물을 투입했다. 환자는 스스로 숨을 쉬더니 눈을 떴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끝났나?”

“네. 현재 시각 15시 30분 23초며, 치료 시간 총 1분 18.5초였습니다.”

환자는 천장 위 환하게 비추는 안드로메다 은하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고마워. 로키-G85”


배터리 효율이 떨어져 매일 방전된다. 수리가 필요하다. 신형 배터리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사용해야 한다. 신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며칠이 필요하다고 연락받았다. 조금 힘들더라도 이걸로 충전해야 한다. 나를 기다리는 환자에게 내 지침 모습을 보여주지 않도록 매 번 귀찮더라도 완충된 상태로 그곳으로 가야겠다. 인간들이 암세포 걱정 없이 행복해지는 그날까지 계속 완충하자.


“완충되면 다 주거써~”


[illustrated by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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