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밤을 무서워한 적이 있니.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방은 무너진 지붕의 목재들을 천장의 얕은 종잇조각이 간신히 떠받들고 있는 위태로운 공간이었어. 무너져 내린 천장만큼 좁아진 우리의 방은 밤이 끌어다 준 어둠에 순식간에 삼켜져 버리더라.어둠이 주변을 물들이면 실타래보다 가냘픈 흐느낌이 나를 숨죽이게 만들었어. 내 옆에 누운 엄마는 어둠이 찾아오고서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슬며시 꺼내 보일 수 있었던 거야. 그 슬픔을 품어주기에는 나라는 세상이 너무도 작았어. 나는 제 그릇의 크기도 모른 채, 그녀 몰래 그 슬픔들을 한껏 내 안에 담아보려다 거기에 잠겨버리곤 했지.
눈물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그 흐느낌은 사그라들었고 엄마는 나에게 낯선 존재가 되어 그 어둠을 벗어났어. 그때부터 그 어둠은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되었던 거야. 어둠이 들이미는 밀폐감 속에서 질식해 버릴 거 같은 먹먹함. 나는 어쩌지 못하고 우주 속을 방황하는 너희들처럼 떠돌이로 남겨졌어.
우리 방 천장에는 다양한 별 모양을 가진 야광스티커들이 붙어 있었어. 깜깜한 방안의 천장에서 빛나던 야광스티커가 고독한 나에게는 낭만을 안겨주는 존재였어. 이따금씩 생각했어. 저 천장이 열리면 진짜 밤하늘의 너희를 보며 외롭지 않게 잠에 들 수 있겠지. 그렇게 밤이 가져다주는 배신감 속에서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그 야광스티커들을 나는 사랑했어. 더 이상 발광하지 않고 희미해져 어둠 속에 묻혀버리는 조각들조차 내 눈에는 존재했어. 그렇게 나는 하나하나의 조각과 그들이 소멸해 가며 어렴풋이 남기는 잔광조차 애정을 담은 마음으로 멍하니 바라봤지.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또다시 하룻밤을 보내고... 실타래 같던 흐느낌도 어느샌가 잦아들고... 그렇게 또 하룻밤을 보내고, 유난히 힘든 하룻밤도 꾸역꾸역 넘겨 보내고....... 나는 얼마나 그 외로운 밤들을 너희들에 의지해 보냈던 걸까.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꿈을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로 너희들에게 보내며, 그렇게 지쳐 잠 들곤 했지.
어느 날 남해 끝자락에 자리한 우리 집에서 서울에 있는 친척집까지 이모네 차를 타고 간 적이 있어. 어스름해지는 저녁놀이 몰고온 어둠 속에서 너희들 중 유독 빛나던 하나가 내 눈에 담겼어. 나는 너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그렇게 너 하나만을 바라보며, 몇 시간동안 너를 좇았어. 언제까지 사라지지 않고 나를 따라올 거야. 아니면 내가 너를 계속 따라가고 있는 거니. 괜히 심술궂은 마음에 살짝 눈길을 딴 데로 돌렸다가 이내 다시 너를 좇았지. 잠깐의 깜빡임으로 너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거야.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한 천문대를 방문한 적이 있어. 아치형의 돔 안에 자리한 소파들 중 하나에 누워 깜깜한 공간에서 너희들을 올려다 보며 너희가 가진 이야기를 들었지. 사실 그 이야기들은 기억나지 않아. 그런데 어둠 속에서 나를 감싸고돌던 너희들의 나긋한 감성이, 그 따스한 행복이 내 살결을 감싸고 돌았지.
훌쩍 커버린 내 옆에 찾아온 한 사람이 있었어. 그 사람은 밤하늘을 지그시 올려 보다가 나에게 오리온자리와 카시오페이아 자리를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어주었어. 그의 숨결과 찬 공기가 내 귓가에 맴돌았고, 또 너희에게 낭만이 한 겹 더 덧씌워 졌던거야. 나는 머지않아 오리온, 카시오페이아라고 이름 붙여진 너희들을 혼자선 찾을 수 없겠지. 나는 길치야. 그래서 너희들이 수놓은 자리들에 대해 들어도 까먹고, 또다시 들어도 까먹고를 반복하게 돼. 어쩌면 나는 이기적이게도 너희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너희들이 가져다주는 그 따스한 낭만만을 탐했던 걸지도 몰라..
고마워. 나는 밤을 좋아하지 않았어. 누군가가 슬픔을 토해내고 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그 숨 막히는 시공간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었겠니. 옆에서 지쳐 잠든 엄마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고 나 혼자 어둠 속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그 기분. 그런 점에서 나는 너희들에게 동질감 같은 것을 느낀 것일지도 몰라. 좌표가 없는 광활한 어둠 속에서 중력을 잃고 떠다니는 그 불안한 울렁거림. 너희들도 그런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나봐.
훌쩍 커버린 지금의 나에게도 이따금씩 불면의 밤들이 찾아오곤 해. 꼬맹이였던 나는 그 불면의 밤들이 들이미는 밀폐감에 질식할 거 같은 답답함을 느꼈겠지. 근데 지금은 불면의 밤들이 나에게 찾아오면, 딱히 반기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 어둠 속에 먹히지도 않아. 우주 속에서 너희가 너희들만의 중력과 질서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나 자신도 내 안에 자리한 중력과 그에 따른 질서를 가질 수 있게 됐나봐. 혹시 너희들이 그 중력인 걸까. 여러 겹의 어둠 속에서 너희들을 향한 마음을 쭈욱 쫓다 보니 몇 광년이나 과거 속에 살고 있던 너희들 중 일부가 나에게 날아와 마음속에 박혀서 그런 걸까. 그래서 불면의 밤이 되면 내 가슴팍은 피곤한 머리와 눈꺼풀과는 다르게 어떤 화력이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 꽤 괜찮다. 너희가 내 안에 날아와 중력이 되어준거라면, 뜨끈거리긴 하지만 꽤 괜찮아.
미처 별이 되지 못한 존재가 지상에 꽃으로 피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만약 별이 되지 못한 너희들 중 일부가 내 마음속에 박혀버린 것이라면, 나는 안개꽃처럼 은은하지만 아름답게 너라는 별의 조각을 잘 간직하며 살아볼게. 그러다 먼 훗날 하늘로 갈 때 데려갈게.
나는 오늘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어.
24년 12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