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다는 말은 누가 처음 내뱉었을까? 어릴 때는 이 말이 싫었는데, 지금은 이 말이 나에게는 친구가 됐다.
꼬꼬맹이 시절, 막내 외삼촌과 오빠, 그리고 나는 나란히 공원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밥을 먹던 중, 내 콧물닦이 손수건이 공원 낙엽 위로 수줍게 떨어졌다. 손수건만큼이나 수줍었던 나는 물끄러미 손수건을 바라만 봤을 뿐, 삼촌께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 손수건은 그렇게 영영 내 손을 떠났다.
중학교 1학년이던 시절, 우리 학급에는 매달 제비 뽑기를 통해 자리를 배정받는 규칙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교단 제일 앞에 앉게 됐다. 교단 앞에 앉은 학생에게는 매 수업마다 주어진 역할이 있었다. 수업 들어오시는 선생님들께, 출석부 작성을 위한 펜을 드리는 일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그 역할이 부끄러운 일이었을까? 매 수업마다, 불타오르는 뺨의 열기가 공기를 통해 선생님께 전해질까 두려워하며, 고개를 살포시 숙인 채 펜을 전달했다. 어느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놀리고 싶으셨나 보다. “고개 좀 들어봐. 왜 이렇게 부끄러워할꼬~ 으응?” 이 말에 순식간에 내 몸은 숯가마에 던져졌다. 선생님 제발요…….
중, 고등학교 때는 유독 문제 풀이를 위해 칠판 앞에 나가는 일이 잦았다. 분필보다 더 경직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나간 후, 칠판과 하나가 될 듯 붙어서 문제를 푼 뒤 설명을 끝내면 후다닥 자리로 들어갔다. 이 성격을 너무 고치고 싶었다. 용기 내 발표를 자주 하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선생님들을 찾아가 질문도 자주 했다. 하지만 뼈까지 소심한 나의 성격은 도무지 떨어져 나가질 않았다. 정~말 질긴 녀석이었다.
성인이 된 후, 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다. 보쌈집, 버거집, 놀이방, 학원, 과외, 기업 채용설명회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리고 중. 고등학생 멘토, 대학생 오티 조장, 수업 조교 등 이끌어 나가는 역할 속에 나를 던졌다. 수업 시간에는 발표를 자처해서 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준비다’라는 마음으로, 남들보다 발표에 더 공을 들였다. 그에 따른 긍정적인 반응들 덕분에 자신감이 붙었고,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금의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의심 없이 말한다.
나는 소심한 성격을 고친 걸까? 나는 아직도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으면 얹히기 일쑤다. 많은 사람들로 둘러 쌓인 공간에서는 내가 사라지고 주변이 너무도 신경 쓰인다. 내 말과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그리고 줄 수 있는 지를 수도 없이 혼자 되새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소심하다. 나의 소심한 성격을 완전히 고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소심함과 함께 살아갈 용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소심함을 숙성시켜 세심함의 장점을 가지게 됐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주변을 한번 더 들여다 보고, 남에게 쉽게 상처 주지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 덕분에,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한 길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덕분에 자신 있게 나다운 길을 선택한다. 지금까지 선택한 길들을 되돌아봤을 때, 안 가본 길에 대한 호기심은 문득 생기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때로 가도 그때의 내가 했을 결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트에 문장을 잘 못 적었다고, 새로운 노트를 살 수 없다. 물론 그럴 수 있는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스스로가 새로운 노트를 살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 인생의 습작 노트를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소심함을 즐기기로 했고, 이것을 세심함으로 숙성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다. 습작노트의 의미처럼 완성된 성격을 바라보기 보다는, 인생을 연습하고 고쳐나가는 이 과정을 즐기기로 했다.
숙련은 힘보다 강하다 - W.G. 배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