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편리한 세상이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세척된 채소와 그렇지 않은 채소를 함께 볼 수 있다. 편의를 생각하면 세척된 당근을 고르는 게 맞다. 하지만 나는 늘 흙 묻은 당근을 고른다. 흙 묻은 채소는 가격도 더 저렴하고,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긴다. 세척된 당근이 머리에 왁스를 잔뜩 바른 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흙 묻은 당근은 운동 후 땀에 절은 채로 우유와 단팥 빵을 복스럽게 먹는 사람같다.
왜 나는 가공되지 않은 존재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걸까?
초등학생이던 어느 날, 엄마께서 몸살로 앓아누우셨던 적이 있다. 내가 아파서 엄마의 간호를 받을 땐 엄마의 관심에 행복했다. 반대 처지가 되니, 아픈 엄마를 보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나는 만 원 지폐 한 장을 들고 와 엄마 눈앞에서 그 지폐를 흔들어 댔다. “엄마 이거 보고 힘내” 엄마는 아픈 와중에도 어이없다는 듯 활짝 웃으셨다. 이 일화는 어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주파수를 탔고, 1등 사연으로 뽑혔다. 항상 돈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사는 엄마를 보고 자랐다. 어린 시절의 나는, '돈이 엄마에겐 가장 효과 좋은 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돈이 아닌 나의 서투른 진심의 약 덕분에, 엄마는 웃으며 다시 회복하셨다.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내 진심 어린 마음에 대한 답으로 한우를 선물해 주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부모님께 감사 편지 쓰는 시간을 가졌다. 며칠 뒤, 선생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재희야, 네가 쓴 편지를 보고 선생님이 많이 울었어. 이거를 꼭 재희 어머니도 보시면 좋겠어. 그리고 단어 조금만 고쳐서 시청에 이 사연을 보내고 싶은데 어때?” 선생님은 하얀 봉투에 내가 쓴 원고지 3장을 넣어 주셨다. 집으로 돌아온 뒤, 엄마께 그 봉투를 드렸다. 엄마는 그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셨다. 지금의 나로서는 차마 쓸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표현들이 가득 담긴 편지였다. ‘어머니께서 돈이 쪼달려서 힘들어하시는 거 다 알아요.’라는 말이 기억난다. 쪼들리다의 경상도 사투리다. 다소 거친 방식의 모자라다는 의미다. 이 서툴고 투박한 표현이 가득 담긴 편지가 시청까지 갔는 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서투른 편지가 어머니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게 했다.
초등학교 5 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의 날을 맞아 썼던 칭찬하기 편지가 뽑혀, 학교 방송국에서 낭송을 한 적이 있다. 낭송을 마치고 반을 돌아와 보니, 학급 친구들이 뒤집어지게 웃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 글이 재밌어서 편지 낭송 내내 웃고 있던 것이다. “수빈이(가명)는 처음 봤을 때 얼굴이 까무잡잡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어요.”이 한 문장 외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때 당시엔 수빈이가 상처 받지는 않았을까 걱정했다. 다행히 그 친구도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수빈이는 참 흥과 끼가 많은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같은 학교를 다니며 친하게 지냈지만, 각자의 길을 걸어간 후로는 서서히 연락이 잦아들었다. 배우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간 수빈이는 멋진 어른으로 삶을 꾸려 나가고 있는 듯하다. 당시 내 투박한 표현으로는 다 담지 못한 진주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며 말이다.
내 말과 글을 좋아해 준 라디오 방송국 분들, 엄마,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흙이 마르지도 않은 채 덕지덕지 붙어있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담긴 말과 글이었다. 흙 속에 묻혀 있던 진심을 알아채고, 사랑해 주던 사람들은 얼마나 순수하고 소중한 사람들인가?
너무 편리한 세상이다. 마트에서 흙 묻은 채소를 집어 든 나의 마음. 그 마음은, 그 시절 흙도 털지 않은 채 전한 내 마음을 받아준 사람들 덕분에 생긴 게 아닐까? 편리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진흙탕 세상 속에서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