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Ouk enkakoumen'

by JJ

존 스토트의 '리더가 리더에게'를 읽다가 'Ouk enkakoumen'(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을 카카오톡 프로필로 옮겼다. 낙심의 시간이 다가올 것이고, 그때 이 문구를 보면서 바울을 떠올리고 싶었다. 정작 낙심이 오자, 우크 엔카쿠멘이 무슨 뜻인지 조차 잊어버렸다.


주변 동료들의 한마디, 문서에 남는 한 줄에 마음을 내던지다 결국 마음이 무너졌다. 말씀으로 붙잡기엔 내 신앙은 얇고 부족했다. 무수한 비관이 포개져 지치고 또 지치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말이 들리지 않고, 일의 지형도 그려지지 않았으며 자기 연민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대한 후회로 이어졌다.


사람은 참 연약하다. 새벽 설교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보낸 자리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자리로 간 이상 세상의 기준이 아니기에 결코 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씀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려 했으나 낙심이 막았다. 낙심하자 낙오자가 됐고, 사막 혹은 밀림 한가운데 버려진 듯했다.


아이의 학습 및 성향, 그리고 부모의 성향을 진단한 후 설명을 들으러 갔다. 직장에서 여러 차례 했던 평가 비슷했다. 사람의 특징과 기질을 몇 가지 단어로 범주화하려는 시도가 유의미하면서도 무의미하기에 듣고 흘려버리기 일쑤였다.


더구나 이번 진단은 100여 문항 정도였다. 나를 판단할 수 있나 싶은 의구심도 있었다. 내 성향은 규범, 이상, 등등 어느 한 곳에 치우쳐 있진 않았지만 특히 인정욕구가 높다고 상담자는 전했다. 그 인정욕구가 지금까지 나를 끌고 왔다고 했다. 칭찬을 갈구하며 살고 있는데 회사를 옮기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기에 칭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결국 목이 말랐고, 낙심했던 내 모습이 보였다.


그날(9일 금요일) 퇴근길, 하나님이 새로운 직장으로 이끌 때 '선교적 사명을 마음에 품으라'라고 하셨다. 선교적 사명에서 사람에게 인정받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하신 지난 한 달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니 감사의 웃음이 나왔다. 이제 어떤 거 더 내려놓게 하려고 하시나, 인정욕까지 내려놓게 하려고 하시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일(토요일) 잘 안 가던 동네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둘째도 순수히 따라나선다. 신간 코너를 보다가 "왜 낙심하는가?" 조정민 목사님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신간이 아니다. 2020년에 4번째 인쇄된 책이다. 그 책을 들고 읽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에도 은혜는 가까이 있다'. 바울이 낙심하였던가.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 사랑, 절제를 믿고 앞으로 전진했다. 존스토트의 책에서 만났던 바울을 다시 만났다.


11일(주일), 주일 설교말씀이 은혜의 회복(고린도전서 15:10)이었다. 은혜를 망각하고, 감격하고, 베풀라고 하셨다. 페이백이 아닌 페이포워드(pay it forward)가 우리의 사명이라고 힘주셨다.


낙심할 필요가 없이, 은혜 안에서 우리는 사명을 실천하고 나아가면 되지만 나는 또 낙심할 것이다. 죗성이 있기에 바울처럼 이제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단언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 기간을 조금 더 짧게, 그리고 일어설 것이다.


소망이 하늘에 있기에, 모든 일에 주께 하듯하겠지만 그렇다고 일 자체에 소망이 아닌 하나님께 모든 소망을 두기에 인정도 하나님께 받고 싶다. 나의 인정욕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받길 원한다. 낙심할 시간이 아니다.


202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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