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감

출근길 횡단보도

by JJ

바삐 가야할 출근 길에 신호등이 연신 걸린다.

어르신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지난해부터 유행하던 스타일의 옷을 입었지만 어딘가 비어 보인다. 젊음이 빠져나간 자리였다.


젊은은 흰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예뻐 보인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그게 젊음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의 나이 즈음이 되어보니 어른들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제는 조금씩 알 게 되는 것 같다.


젊음이 있었을 때, 우리는 늘 부족했고, 늘 갈구했고 어딘가 불안했다. 평균의 삶을 살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누구는 어디에 취직해서 집을 샀고, 누구는 유학을 다녀와 교수가 됐고, 누구는 뭘로 돈을 많이 벌었다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조바심이 났다. 안정되고 싶었고, 일찍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 조차도 아름다웠으리라 여겨진다. 한켠에선 그렇게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셨던 거 같다.


젊음의 시기에 아둥바둥 거리며 허우적 대다보니 어느새 40대를 넘어 50을 바라보는 시간의 단면에 섰다. 스물스물 사라져가는 젊음 사이로 나이듦에 대한 생각이 다가온다.


그날 횡단보도를 건너던 어르신에게 젊음은 없었다. 옷으로도 화려한 모자로도 가려지지 않던 늙음은 온 몸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대신 젊음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조금씩 전에 없던 자족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르신의 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빨간불에서 초록불로 신호등이 바뀌었다. 어르신의 자족감이 흐르는 횡단보도를 살며시 바라보다 다시 차의 속도를 올렸다. 다행히 뒷차의 아우성은 없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