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의 자연이 좋았고 평화로움이 좋았다.
도시의 바쁨에서 벗어나 힐링하는 느낌이었는데 이것도 4개월이 지나니 친숙하다 못해 일상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그토록 신기하고 좋았던 것들이 한순간에 실증날 수도 있다는 게, 뭐랄까,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한 것 같다.
너무나 익숙하다가도 한도 끝도 없이 낯선 빅토리아
타지에서 살고 있음을 잊을 만큼 내 주변 모든 사람들, 이웃, 동네가 익숙하다. 아,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은 외국인 신분이구나, 타인이구나 싶어 낯설어지는. 그런 빅토리아가 지금 내가 느끼는 캐나다.
파란 하늘에 짱짱한 빅토리아 날씨와 친절한 사람들이 너무 좋은데 그럼에도 마음 한켠이 무거운 건 이제 내가 그 무서운 단어 '절반'에 다다랐기 때문이겠지.
1. 남는다.
빅토리아는 겨울에도 그렇게 춥지 않고 날씨가 온화하다던데.. 남아볼까?
2. 떠난다.
날씨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색다른 변화가 필요한데. 일단 다른 지역 한번 가볼까???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결국 '떠난다'를 택했다.
역시 수많이 생각하고 번뇌해도 행동, 실천이 갑. 일하던 곳과 집주인에게 지역 이동 결심을 알리고 나니 이제 좀 실감이 났다. 마치 과거에 캐나다 워홀 비자 신청 후 캐나다행 항공권을 구매하고 나서의 실감과 같은 격의 감정을 오늘 다시 느꼈다.
생각해보면 5개월 차 문턱으로 막 진입한 워홀 생활 속에서도 한국으로 되돌아갈까 했던 고민의 순간들이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있었다. 한없이 깊은 생각에 빠져서 우울했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렸던 결론은 선택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링 위에서 흰 수건을 던지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 기권, 포기도 오롯이 내 몫이고 그것들은 항상 내 주머니 속에 있다는 것. 가족들의 품이 그리울 때마다 오히려 이런 생각들을 하면 마음이 더 편해지고 조금 더 즐겨볼까, 하는 긍정적 마인드가 생겼다.
뭔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진 못하더라도 그 도전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성과가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부터 나는 분명 많은 것들을 얻고 떠나겠지.
사실 지내면서 내 인생이 크게 바뀐 걸 몰랐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생겼음을.
Victoria, BC--------------✈Toronto, ON
떠날 준비는 끝났다.
떠남에 아쉬워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에 설레 하는 이상한 기분.
빅토리아에서의 마지막 밤.
그래서인지 잠 못 이루는 밤.
즐거웠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