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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제시 Oct 26. 2022

새해


Harbourfront에서는 12월 31일 11시 59분 50초부터 카운트다운을 시작해서 새해를 맞이하는 불꽃놀이가 펼쳐지는데, 그 광경을 보러 수많은 현지인들과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사실 12월 마지막 주, Papyrus 매니저는 새해 당일 일할 직원들이 있는지 한 명 한 명 붙잡고 의사를 물었다. 1월 1일 새해에는 수많은 손님들이 가족들 혹은 친한 지인에게 줄 카드를 사 가거나 혹은 선물을 잔뜩 사와 이쁘게 포장을 해달라고 파피루스에 모여들 것이다. 이는 곧 매우 매우 바쁜 하루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미 핼러윈데이와 크리스마스 때 그 무시무시한 바쁨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나는 이번 새해만큼은 1.5배를 포기하고 쉬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 캐나다는 빨간 날에 일을 하지 않아도 평균 급여는 챙겨주기 때문이다. 대신 일하면 급여의 1.5배를 받을 수 있다.)


결전의 12월 마지막 날. 나는 별다른 약속이 없었고,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Second Cup 직원들이랑 일 마치고 같이 다운타운의 폭죽을 감상하러 가기로 이미 사전에 말을 맞췄기 때문에, 미들 타임 쉬프트에 지원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전날 파피루스 마감을 했다) 가볍게 브런치를 먹고 이미 아침부터 출근해 일을 하고 있는 동료 중 한 명에게 많이 바쁘냐고 디엠으로 물어봤다. 일하느라 바로 답장 못 할 줄 알았는데, 웬걸? 의외로 답장은 금방 왔다. 평소 같았으면 출근 전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러 왔을 단골들이, 출근을 안 하니 카페도 안 오고 있다는 것이다... 손님이 너무 없어서 오너인 Martin은 그냥 쉬엄쉬엄 일하며 연말을 즐기라며 케이크랑 먹을거리를 잔뜩 사 와서는 손님용 테이블에 흩트려 놓기 바쁘다나. 그래도 새해 이브니깐 바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소식이었다.


오랜만에 미들 타임 근무라, 오후 12시가 넘어서 여유 돋게 출근 준비를 했다. 이른 새벽에 살포시 내려 살포시 내려앉은 눈을 밟아주며 도착한 매장 안은 그야말로 썰렁했다. 반겨주는 이는 Martin과 같이 일할 Edmel, Victor 가 다였다. 딸기가 잔뜩 올려져 있던 초콜릿 케이크를 한입 베어 물고는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카운터에 섰지만, 여전히 한산하다. 손님도 드문드문 들어왔고, 매장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보다 가족들과 함께 즐길 케이크를 사러 잠시 들린 손님들이 대다수였다. 차라리 바빴으면 시간이라도 빨리 갔을 텐데... 정말 더디게도 움직이던 시곗바늘이 6시로 향하자마자 바로 에이프런을 벗어던지고 차를 끌고 온 Victor, 유일한 차 소지자였기 때문에 어디 놀러 갈 때면 항상 이 친구를 꼬시곤 했다. 그래야 가는 길이 편하니까...ㅎㅎ


빵빵한 패딩에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치렁치렁 두르고 왔지만, 확실히 토론토의 겨울... 새해를 알리듯 불어대는 찬바람에 '그냥 집에 갈까...'라고 몇 번을 고민하던 그때! 주변이 시끌벅적 소란스러워지더니 숫자 모양 불꽃들이 몇 발 터지며 본격적인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불꽃놀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영상만이 남겨져있는데, 브런치에는 영상을 올리지 못하는 점이 참 아쉽다. 기다렸던 시간이 아까울 만큼 화려한 불꽃놀이는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새해라고 길거리 곳곳에서 막 클락션이 올리고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돌발상황이 생길까 봐 대기 중인 결찰 차도 수십대가 보였다.


너무 늦지 않게 집에 들어가기로 홈맘과 약속했던 나는, 집 방향이 비슷한 Victor 덕분에 집까지 따뜻하고 안전하게 올 수 있었고, 집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1월 1일 새벽 2시가 다돼간다.





1층 거실은 텅 비어있었고, 탁자 위에 'Happy New Year! Help yourself to the cake.'라고 적힌 메모장 한 장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냉장고에는 'for Jasmine'라고 표시까지 되어있는 초콜릿 케이크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새해 첫 일상은 화려한 불꽃처럼 찬란하게, 초콜릿 케이크처럼 달달하게 시작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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