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말, 사촌언니 집에서 언니와 놀이터를 다녀온다고 하더니 손이 찐득해질 만큼 불량식품들을 사 먹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들어왔다.아마도 아껴 모아온 용돈을 들고 편의점을 다녀온 것 같았다.
잘 놀고 우리 집으로 돌아오니 그제야 텅 빈 지갑에 걱정 반, 엄마에게 혼날 걱정 반으로 약간은 풀이 죽어있는 표정이더니 저녁 먹으면서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 저 용돈 다 썼어요."
"그랬어? 괜찮아. 니 돈이니까 다 써도 돼.
다음 주 용돈 받을 때까지 돈이 없어서 이제 먹고 싶은걸 못 먹겠네. 어쩔 수 없지 뭐.
그래도 돈이 없으면 집안일해서 돈 벌 수 있는 건 알지?
원할 때 말해! 엄마가 요청 안 해도 네가 먼저 한다면 엄마가 얼마든지 집안일 시켜줄게."
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더니 엄마에게 혼날 줄 알았는데 혼 안내서 다행이란다.
돈을 쓰는 그 당시엔 쓰는 즐거움으로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곰곰이생각해 보니 일주일치 용돈을 한방에 다 쓴 일은 혼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편의점에 있을 그땐 용돈을 다 쓰는 게 고민되지 않을 만큼 아이에겐 너무나 달콤하고 간식이었으리라.
역시 돈은 모으긴 어렵고 탕진은 쉽다.
아이나 어른이나, 참 돈벌기 힘들다.
사실 편의점 과자 하나에 1,500원을 훌쩍 넘는 이 시대에 일주일에 1,500원이라는 아이의 용돈은 한 없이 작다.
그럼에도 아이의 일주일 용돈을 1,500원으로 책정한 것은 아이에게 돈의 소중함을 알려주고자 하는 계획이 깔려 있었다.
우리 집엔 집안일을 하면 용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아이와 함께 "집안일 용돈게시판"을 만들고 몇 달 전부터 활용 중이다. 조금 귀찮지만 집안일을 하면 몇 백 원이라도 벌 수가 있다.
아무 대가 없이 집안일을 시키면 아이에게 그저 잔소리로 들리겠지만 일한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건 아이에게도 나름 솔깃한 제안이다. 덕분에 주말마다 하는 청소에 아이가 동참하니 우리 부부도 썩 만족하고 있다.
아이와 하나하나 정한 '집안일 용돈게시판'
모든 일정들이 엄마아빠가 설정한 대로 움직여야 했던 유치원 시절과는 달리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하교 이후 짧은 자유시간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이터에서 놀다가 용돈을 가지고 편의점이나 무인가게를 가는 일이 자주 있다.
초등학생이 되고 처음 스스로 하는 경제활동이니 만큼(경제활동 보단 소비활동이라는 말이 좀 더 적절하겠다) 아이들은 과자사러 가는게 무척이나 신이 났을 거다.
그러나 돈이 없는 사람은 다른 아이를 부러워하거나 얻어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엄마, 오늘 신발정리 해도 돼요?"
"오~ 집안일해서 돈 벌고 싶어? 얼마든지~ 자기 전에 얼른해! 용돈 줄게!"
아이는 급 없어진 용돈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집안일을 자처하고 나섰다.
작은 손으로 나름 신속하게 신발 정리와 이불 정리를 마친 아이의 손에는 고작 작은 동전 몇 개만 쥐어져 있었다.
노동의 가치로 주어진 용돈은 아이에게 값진 결과물이긴 하지만 이게 아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돈벌이라 언제 벌어서 또 편의점을 갈 수 있나 고민이 많아진 듯했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뭘까?
아이와 자기 전 침대 함께 누워 오늘 있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데, 오늘따라 아이는 돈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엄마는 얼마 벌어?"
"돈 많이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해?"
돈이 궁하니 돈이 많이 궁금해진 모양이다. 엄마가 한 달에 얼마 버는지 듣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그러더니 커서 엄마처럼 회사원이 될 거란다.
(참고로 나는 평범한 월급을 받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다.)
꿈을 좇는 장래희망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한 장래희망을 벌써부터 생각하다니 좀 서글픈 마음이 들긴 했다. 게다가 아이는 내가 회사 다닌다고만 알고 있지 정확히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말인 즉 회사원이 되어 돈만 벌 수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가 돈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을 가지고 돈이 일상생활을 할 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하긴 하다.
돈은 그런 존재니까. 없으면 아쉽고 불편하고, 있으면 세상을 좀 더 편하고 쉽게 살 수 있는 존재.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시작한 이후 아이는 돈을 많이 벌고 싶어졌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와 같은 회사원보다 돈 많이 버는 사람 엄청나게 많다고 했더니,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지 알 것 같다고 한다.
흥미롭게 바라보니, 신이 나서 말한다.
"엄마. 큰 마트에서 돈 받는 사람 하고 싶어.
매일 엄청 돈을 많이 벌잖아!"
마트 계산원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한 발상 자체는 매우 기발하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돈을 주려고 줄을 서 있으니 그 마트 내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계산원이긴 하다.
마트에서 돈을 가장 많이 보고, 가장 많이 만지는 사람은 계산원이지만, 돈을 가장 많이 버는 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럼 그 돈은 다 누구 거예요?"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계산원은 돈을 받아서 넣는 일만 하는 거라고. 돈통에 돈이 엄청 많아도, 퇴근 전에는 다 마트 안에 두고 간다고 그랬더니 퇴근할 때 그날 번 돈을 가지고 집에 가면 되지 않냐는 거다.
(역시 ㅎㅎ 아이의 발상이란 ㅎ)
그래서 돈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지키는 사람 또한마트 사장님께 돈을 받으면서 일한다고 말해주니
그제야 아이는 큰 소리로 대답한다.
"아! 알겠다! 마트 사장님이 젤 돈이 많구나!
대박~그럼 난 커서 마트 사장님 할래!"
(단순해서 더 귀여운 딸 ㅎ)
마트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물건을 진열하지 않아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지 않고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그 마트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번다. 아이에게 마트 사장님처럼 본인이 직접 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면 아주 많이 벌 수 있지만 장사가 안되면 때로는 많이 못 벌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엄마처럼 직장에서 일을 하면 일한 시간만큼 돈을 벌 수 있다고도 알려줬다. 커서 하고 싶은 일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으니 돈을 벌고 싶다면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지만, 직업에 따라 돈의 크기는 다를 수 있다고 하니 꽤나 흥미로운 눈빛으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직업이 뭔지 궁금해했다.
그래도 제대로 사실은 알아야 하니, 아이에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에 대해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연봉이 높은 직업]
1위. 기업 고위임원
2위. 성형외과 의사
3위. 한의사
4위. 정신과 의사
5위. 내과 의사
6위. 안과 의사
7위. 외과 의사
8위. 소아과 의사
9위. 이비인후과 의사
10위. 산부인과 의사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연봉이 높은 직업은 고위 임원을 제외하고 2위부터 10위가 온통 "의사"다. 아이는 주사를 싫어해서 한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의사라는 직업이 돈을 많이 번다고하니 장래희망을 의사로 선택할지 고민이 되는 눈치다.
아이도 크면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공부를 엄청나게 열심히 해야 한다는걸 조만간 깨닫게 되겠지만 그런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는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아이는 장래희망으로 돈 잘 버는 직업인 "의사"와 마트 안에서 가장 많이 버는 마트 "사장님" 중에 뭐가 더 좋을지 고민을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부자는 누군데?
아이는 요즘 부쩍 돈에 계속 관심이 늘면서 돈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요즘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만 잘하면 세상을 쉽게 살 수 있다고 배우면서 자랐다. 계속되는 암기와 산수 문제들을 잘 풀어서 100점만 맞으면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보니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알바를 해보니,
무식해 보이면서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장님이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이었다.
사회에 나와보니,
어릴 적 공부도 못했지만 주식과 부동산을 잘했던 친구가 성과급이나 승진에 목매는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이었다.
"그럼 누가 부자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고연봉 직업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 부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한국부자보고서"에서 말하는 부자의 직업 절반 이상이 의사와 같은 전문직이 아닌 사업체 운영이다.
투자유형별 가구주 직업 (출처: https://kbthink.com/)
뭔가 일반 직장인을 폄하하고 사업만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 같겠지만 사업도 부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자, 자아실현의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아이에게 장래희망을 내 뜻대로 강요할 순 없지만 돈에 대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처럼 나이 들어가기 보단 조금은 돈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